영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제충격 여파로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국채를 발행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국은행(BOE·사진)도 시중의 유동성을 늘리기 위해 마이너스 기준금리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도 유럽연합(EU)에 이어 채권과 기준금리가 마이너스까지 떨어지는 ‘마이너스 경제’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 재무부 산하 부채관리청은 20일(현지시간) 2023년 만기인 3년물 국채 38억파운드(약 5조7000억원)를 입찰에 붙였다. 입찰 결과 사상 최저 수익률인 연 -0.003%에 매각됐다. 국채 표면금리는 연 0.75%이지만, 투자자들로부터 액면가보다 비싼 금액을 받은 할증발행을 통해 마이너스 금리 효과가 발생했다.
마이너스 채권은 투자자가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사실상 수수료(보관료)를 내는 것이다. 만기까지 보유하면 투자자는 받을 돈이 줄어들어 손해다. 국채금리가 마이너스 금리가 되면 ‘들고 있는다’는 뜻의 캐리(carry)수익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날 입찰에서 응찰률은 2.15배까지 올랐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에 마이너스 수익률에도 안전자산이 국채로 쏠린 것이다.
영국 정부는 2016년 1개월 만기채권을 마이너스 수익률로 일시 판매했다. 하지만 만기가 긴 국채를 마이너스 수익률로 매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유럽 국가 중 독일과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이 마이너스 국채를 발행한 바 있다.
영국 정부의 사상 첫 마이너스 국채 발행으로 마이너스 기준금리 시대도 조만간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는 목적은 시중 유동성 공급이다.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시중에 돈을 풀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경기둔화 우려에 유동성이 중앙은행으로 유입되자 이를 막기 위해 강제로 사실상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BOE도 마이너스 기준금리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앤드루 베일리 BOE 총재는 이날 하원 상임위원회에 출석해 “현재 상황에서 모든 수단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마이너스금리 도입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공식 취임한 베일리 총재가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뜻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이달 초까지만 하더라도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추진하거나 심사숙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베일리 총재는 이날 “입장이 조금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이너스금리가 영국 금융시스템에 맞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연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중앙은행은 유럽중앙은행(ECB), 일본, 스위스, 덴마크 등이다.
영국의 기준금리는 현재 연 0.1%다. BOE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지난 3월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연 0.75%에서 연 0.1%까지 낮췄다. BOE는 지난 3월11일 기준금리를 기존 연 0.75%에서 연 0.25%로 0.5%포인트로 인하했다. 이어 같은 달 19일에 기준금리를 연 0.25%에서 연 0.1%로 0.15%포인트 낮췄다. 연 0.1%는 1694년 BOE가 설립된 이래 가장 낮은 기준금리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