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 옵션·기금형 퇴직연금 도입해야"

입력 2020-05-20 17:16
수정 2020-05-21 01:16
‘무관심’과 ‘방치’는 국내 퇴직연금 시장의 최대 문제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디폴트 옵션(자동투자제도)과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연금 선진국은 대부분 두 제도를 모두 채택하고 있다.


디폴트 옵션은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가입자(근로자)가 일정 기간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사업자가 알아서 퇴직연금 자산을 굴려주는 제도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투자 지식이 부족한 가입자도 안전자산 위주의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할 수 있다”며 “미국과 호주도 디폴트 옵션 등을 도입한 뒤 퇴직연금 시장이 크게 성장하는 계기를 맞았다”고 말했다.

미국은 2006년 연금보호법을 제정하면서 디폴트 옵션이 자리를 잡았다. 그전에도 디폴트 옵션은 있었다. 하지만 손실 책임 때문에 기업이 도입을 꺼렸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연금보호법은 특정 조건에 부합하는 상품으로 디폴트 옵션을 제공하면 운용 손실 책임을 기업에 묻지 않는 면책 조항을 담았다”며 “이후 디폴트 옵션 도입이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호주도 2014년 ‘마이슈퍼’를 출범시킨 뒤 디폴트 옵션이 급속도로 확산했다. 기존 민간 사업자가 제공하던 여러 디폴트 옵션을 하나로 통합한 서비스다. 마이슈퍼는 주식 53%, 채권 21%, 부동산 10% 등으로 분산 투자하면서 연평균 5~6%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도 대안으로 꼽힌다. 현재 한국이 도입한 퇴직연금은 계약형이다. 기업이나 근로자가 은행이나 보험사, 증권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와 계약을 맺고 운용하는 구조다. 선진국에선 기금형이 흔하다. 전문 위탁기관에 맡기는 형태다. 운용에 애로를 겪는 기업들이 공동기금(연합형 구조)을 구성해 연금자산을 운용할 수 있다. 업종별로 ‘금융인 퇴직연금’ 또는 사업장별로 ‘삼성그룹 퇴직연금’ 등을 조성해 굴리는 방식이다. 별도의 기금 운용 책임자가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처럼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효율적으로 자산을 굴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국내에서 두 제도 도입을 위한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발의됐다. 하지만 20대 국회 임기가 오는 29일 끝나면서 자동 폐기될 예정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