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언니네이발관 멤버이자 '가장 보통의 존재' 등을 쓴 작가인 이석원이 정의연과 그들의 지지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이용수 할머니를 비난을 지적했다.
이석원은 19일 자신의 블로그 '글을 위한 글'에 '화요일'이라는 제목으로 "작금의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 사태에서 그간 우리 사회에서 소위 진보연 해온 이들의 자기 모순적 행태가 가관이다"며 "그들은 자신들의 진영을 지키기 위해 할머니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집단적 린치를 가했다"면서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앞서 이용수 할머니는 정의연의 기부금 사용처에 의문을 제기했고, 정의연 측은 기자회견까지 열며 모든 혐의를 부인했지만 영수증 제출 등 회계 검증엔 응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국세청 공시와 기부금 명목 등에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정의연의 부정 회계 의혹이 커지면서 "할머니들의 아픔을 돈벌이에 이용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정의연 지지자들은 첫 폭로자인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인격 모독적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이석원은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 "배후가 있는 친일파의 준동으로 몰아가며 당사자를 지우고(우희종, 전우용) 노인이라 정신이 오락 가락 하다며 할머니를 모독하고(한경희, 변영주, 김갑수) 단순히 소외감에서 비롯된 노인의 어린애 같은 투정으로 지속해서 폄하했다(김어준, 이나영)"고 지적하며 "심지어 돈 때문으로 매도한 사람도 있다(김두일)"이라는 발언을 언급하며 비판했다.
또 "배우 김의성은 할머니의 문제제기 직후 수요일 집회에 참석함으로써 사실상 단체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이에 반발이 일자, 이 일 터지기 전에 이용수 할머니 이름 석자나 알던 친구들 있느냐며 일갈했지만, 오히려 그 일갈은 이용수 할머니의 운동가로서, 피해 당사자로서의 그간의 활동과 행적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했다.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서는 "일본에 직접 배상 투쟁을 벌이기 위해 96년 3월 경북대에 명예학생으로 입학 법률공부를 시작해 3년만에 마치셨으며 2012년 10월 도쿄재판소에서 열린 한일협정 문서공개 재판에서 모두의 예상을 뛰어 넘는 승소 판결을 얻어 내셨다"며 "2015년 박근혜 정권 당시 위안부 피해자들과 사전협의가 없었던 것에 대해 외교 차관을 찾아가 직접 항의하고, 2007년 미 하원에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결의문을 통과시키는데도 힘쓰셨다"고 업적을 소개했다.
또한 "할머니는 이 모든 문제를 좀 더 직접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2012년에는 민주당에 비례 대표까지 신청하실 정도로 적극적이고 왕성한 활동을 해 오셨다"며 "그런 할머니의 국회 입성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가 정작 자신은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 윤미향 당선자"라고 꼬집었다.
정의연 측에 선 이들이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을 검증하려 하고, 할머니의 입장문을 누군가가 대신 작성해준 것이라 폄하하고, 신념도 철학도 없는 뒷방 늙은이 취급을 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할머니들이 고령이라 '원래' 기억이 오락가락 하시다는 얘길 함부로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증언이 일본을 향할 때만 유효하나는 거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위안부 할머니들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찍고, 이들을 위한 발언을 반복적으로 했던 변영주 감독이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 "원래 그런분이라고 그러지 않았냐"며 "법적인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글을 썼던 것에 대해서도 "과연 지난날 무슨 마음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영화를 찍은 것일까"라며 "이런 상황에서 할머니 편에 서는게 아니라 할머니를 상대로 방어를 해야하는 쪽에 이입하고 편을 든것은 결국 당사자가 아닌 돕는자의 한계, 다시말해 시혜자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지"라고 날선 비판을 했다.
또한 "반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반성할 줄 모르는게 부끄러운 거지. 바로 우리가 일본에게 평생 한 말 아니었냐"며 "그러나 이번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할머니를 알게 모르게 공격하고 그 인격과 정신을 폄훼하고 의심한 이들이 반성할 여지는 드물어 보인다"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다음은 이석원의 글 전문
화요일
작금의 정의연 사태에서 그간 우리 사회에서 소위 진보연 해온 이들의 자기 모순적 행태가 가관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진영을 지키기 위해 할머니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집단적 린치를 가했다.
그들은 정의연의 활동에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 위안부 문제의 몇 안되는 생존 피해 당사자인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
배후가 있는 친일파의 준동으로 몰아가며 당사자를 지우고 (우희종, 전우용)
노인이라 정신이 오락 가락 하다며 할머니를 모독하고 (한경희, 변영주, 김갑수)
단순히 소외감에서 비롯된 노인의 어린애 같은 투정으로 지속해서 폄하했다. (김어준, 이나영)
심지어 돈 때문으로 매도한 사람도 있다. (김두일)
배우 김의성은 할머니의 문제제기 직후 수요일 집회에 참석함으로써 사실상 단체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이에 반발이 일자, 이 일 터지기 전에 이용수 할머니 이름 석자나 알던 친구들 있느냐며 일갈했지만 오히려 그 일갈은 이용수 할머니의 운동가로서, 피해 당사자로서의 그간의 활동과 행적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할머니의 활동은 국민들이 왜 이렇게까지 모르고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 범위가 넓고 왕성 했다.
할머니는 일본에 직접 배상 투쟁을 벌이기 위해 96년 3월 경북대에 명예학생으로 입학 법률공부를 시작해 3년만에 마치셨으며 2012년 10월 도쿄재판소에서 열린 한일협정 문서공개 재판에서 모두의 예상을 뛰어 넘는 승소 판결을 얻어 내셨다. 2015년 박근혜 정권 당시에는 위안부 피해자들과의 사전협의가 없었던데 대해 외교 차관을 찾아가 직접 항의 하셨고 “당신 어느 나라 소속이냐” 2007년 미 하원에서 위안부문제 해결 촉구 결의문을 통과시키는데도 힘쓰셨으며 일각에서 조선왕조실록등 조선문화재 반환을 추친할때 한국 정치인들중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자 할머니께서 직접 일본국회의원 40명을 연결, 그들의 서명을 받아 문화재 환수를 이끌어내신 적도 있었다.
할머니는 이 모든 문제를 좀 더 직접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2012년에는 민주당에 비례 대표까지 신청하실 정도로 적극적이고 왕성한 활동을 해 오셨다.
그런 할머니의 국회 입성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가 정작 자신은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 윤미향 당선자인 것인데 이런 분을 신념도 철학도 지식도 없는 뒷방 늙은이 취급하며 직접 작성하신 입장문을 발표하셨을땐 너무도 간결 명료한 내용에 누가 대신 작성해준 걸거라며 또다시 할머니의 명예가 훼손 당하는 일이 반복 됐다.
할머니는 이런 이력을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누구도 그 분의 발언할 자격 여부에대해 따질 수 없다. 바로 위안부 문제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피해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런데도 그런 할머니의 문제제기에 대해 시종 일관 피해자의 발언과 행위를 검증하려들고 피해자의 피해자로서의 자격 여부를 따지려는 행위를 거리낌 없이 일삼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행태를 누구보다 앞장서서 비난하며 그래선 안된다고 하던 이들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피해자의 발언이 자신들을 향하자 일제히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피해자를 지우고 모독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완벽한 여성 혐오이자 노인 혐오, 인격 모독 등을 통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누가, 무엇 때문에 이런 일들을 벌이는가.
할머니가 나이가 고령이라 혹은 전부터 '원래' 기억이 오락가락 하시다는 얘길 함부로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어째서 기억에 문제가 있는 분을 앞세우고 증언을 청취했을까. 그 증언은 일본을 향할때만 유효하고 자신들을 겨냥할때엔 검증이 필요한 것인가?
이들의 할머니에 대한 반격은 이리도 옹색하고 자기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다.
윤미향 당선자의 남편은 김두일이란 사람이 할머니가 돈 때문에 저러는것 같다는 글을 쓰자 그 글을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신문에 올렸다가 삭제 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평생 남의 잘못을 지탄해온 사람들이 언젠가 화살이 자신에게로 향할때 얼마나 치졸해지는지 수없이 보아 왔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 나는 생각한다.
이번일이 터지자 거리낌없이 할머니를 무시하고 모독하던 사람들중 다수가 어차피 진영의 이익을 위해 복무해온 자들인만큼 그들의 그런 행태가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법적 책임 운운하며 누구보다 앞장서서 가장 저열한 언어로 할머니를 재단하던 어떤 이의 모습은 특히 씁쓸하다. 그는 과연 지난날 무슨 마음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영화를 찍은 것일까. 그가 이런 상황에서 할머니 편에 서는게 아니라 할머니를 상대로 방어를 해야하는 쪽에 이입하고 편을 든것은 결국 당사자가 아닌 돕는자의 한계, 다시말해 시혜자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지. 위안부 할머니들은 단지 피해자이기 때문에 그 존재의 의미가 있을 뿐 혼자서는 싸울줄도 올바른 판단을 할줄도 모르는 그저 도움이 필요한 아이같은 존재로 계속해서 묘사 하면서 누구보다 이용수 할머니에게 무례했던 그는 끝내 할머니에겐 사과조차 남기지 않고 무책임하게 에스엔에스를 접었다.
할머니께서, 이용수 운동가께서 분명한 이성적 인식의 틀 하에서 사심없이 질타를 하셨음에도. 그 누구보다 온몸으로 싸워 오셨음에도.
이것은 일개 회계 부정의 문제가 아니다. 활동가의 삼십년 헌신이 무너지느니 어쩌느니 하는 사람중에 할머니의 무너지는 인격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한 운동이었나. 이렇게 피해자가 배제되어온 운동 방식이라면 처절히 반성하고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하지 않나?
내가 알아본 바로는 그간 할머니들의 이런식의 폭로성 문제제기가 여러번 있었지만 모두 묵살 당했다.
왜 무엇을 위해 사람들은 수요일마다 모였고 성금을 냈는가.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과연 그간 우리에게 어떠한 편집 없이 전달 되었는가.
반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반성할 줄 모르는게 부끄러운 거지. 바로 우리가 일본에게 평생 한 말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번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할머니를 알게 모르게 공격하고 그 인격과 정신을 폄훼하고 의심한 이들이 반성할 여지는 드물어 보인다. 그들이 평생 비난한 대상처럼.
마치 거울처럼.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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