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폐지 앞둔 요금인가제…통신사 '파격 요금제' 길 열리나

입력 2020-05-19 17:26
수정 2020-10-13 15:59

통신 요금인가제가 30년 만에 폐지를 앞두고 있다. SK텔레콤 등 통신사업자가 새로운 요금 상품을 낼 때마다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 제도다. 시민단체들은 이 규제가 없어지면 통신요금이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에선 도입 당시와 시장 상황이 달라졌고 요금인가제가 되레 통신사 간 경쟁을 저해한 측면이 있는 만큼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통신사 간 요금 경쟁 저해”

요금인가제 폐지안이 포함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통과될 경우 1991년 도입된 요금인가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 제도는 통신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를 견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새 요금제를 출시할 때 미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요금 약관을 제출하고 사전 인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동전화 시장에선 SK텔레콤, 유선전화 시장에선 KT가 인가 대상이다. 나머지 통신사들은 과기정통부에 신고만 하면 된다. 가입자가 크게 준 유선전화 시장에선 요금인가제가 사실상 효력을 잃었고 이동전화 시장에서의 존폐 여부가 쟁점이다.

요금인가제 도입 취지는 통신 시장의 과점 사업자가 후발 사업자가 따라올 수 없는 낮은 가격의 요금상품을 내놔 점유율을 높이거나 반대로 높은 점유율을 앞세워 과도하게 높은 요금을 받는 약탈 행위의 방지였다. 하지만 시장에서 나타난 현상은 이와 동떨어졌다. SK텔레콤이 새 요금제를 정부에 제출하면 KT와 LG유플러스가 이 정보를 알아내 비슷한 요금제를 내놓는 일이 지속됐다. 정부가 사실상 ‘요금 하한선’을 정하는 효과를 내 통신사 간 요금 경쟁을 막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같은 이유에서 정부는 2014년부터 폐지를 추진했다. 하지만 인가제가 없어지면 통신요금이 오를 것이란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나오면서 번번이 미뤄졌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양쪽 의견을 절충해 인가제를 폐지하고 유보신고제를 도입하겠다는 대안을 내놨다. SK텔레콤 등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새로운 통신요금을 신고한 뒤 시장에 내놓으면 정부가 사후에 15일 동안 심사해 문제가 있을 경우 반려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인가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시민단체들은 요금인가제 폐지에 반대하고 나섰다. 인가제라는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요금 인상을 막지 못했는데 이것마저 없어진다면 통신사들이 요금을 폭발적으로 올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드시 법 개정안 통과를 저지하겠다는 자세다.

이들은 인가제를 운영하면서 SK텔레콤의 통신요금 신청이 반려된 사례가 그동안 한 번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4월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를 앞두고 SK텔레콤이 7만원이 넘는 요금제만 신청하자 과기정통부는 이용자 차별을 이유로 반려했다.

“시장 달라져…요금 경쟁 활성화될 것”

업계에선 요금인가제 폐지가 통신사 간 요금 경쟁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진 5G처럼 새로운 서비스가 나올 때 SK텔레콤이 요금제를 정부에 제출하면 나머지 두 통신사도 이와 비슷한 요금제를 선보였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인가제가 없어지면 통신사들이 각사의 여건에 따라 고객을 유인할 요금 상품을 개발하는 등 요금 경쟁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 당사자인 SK텔레콤은 이번 법 개정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이 법이 생길 당시 SK텔레콤의 시장 점유율은 50%를 넘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하면서 40%대로 떨어졌다”며 “통신사 간 경쟁이 치열한데 요금인가제가 없어졌다고 통신 요금을 올린다면 고객들이 다른 통신사로 곧장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유보신고제가 충분한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요금 출시까지 3~4개월이 걸리는 경직된 체계를 바꿀 필요가 있다”며 “세계적으로 소매 가격을 직접 통제하는 규제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