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풍속 등 수많은 변수 계산…수학 기반 SW로 항공기 지름길 찾아줘

입력 2020-05-18 17:44
수정 2020-05-19 01:02

하늘길에는 육상 도로와 달리 표지판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수많은 항공기는 최적 경로를 찾아 비행한다. 이 같은 비행 기술에 수학이 활용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럽연합(EU) 내 2대 항공사 중 하나인 루프트한자는 독일 베를린의 산업수학 기업 LBW가 개발한 수학 기반 소프트웨어로 항공기 경로와 운항 순번을 최적화하고 있다.

항공기는 운항할 수 있는 영공이 법적으로 지정돼 있다. LBW의 소프트웨어는 지나갈 수 있는 영공을 그래프로 변환한 뒤 날씨, 풍속 등 무수한 변수로 함수를 만들고 미분방정식 등을 써서 최적 경로를 찾는다. 이 소프트웨어 적용 결과 대만 타이베이에서 미국 뉴욕까지 가는 새 경로가 나왔다. 보잉 B777-300ER 모델 기준 비행시간이 기존보다 45분, 연료 소모량은 5665㎏ 줄었다. 총운항비용이 7만6453달러에서 7만1118달러로 5335달러(약 650만원) 감소했다. 랄프 보른되르퍼 LBW 대표(베를린자유대 수학과 교수)는 “루프트한자 항공기 조종석에 우리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실시간으로 최적화 경로를 기장에게 보여줄 방법이 있는지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LBW는 독일의 대표적 산업수학 연구기관인 쥐세연구소(ZIB)에서 분사한 기업이다. 1984년 설립된 ZIB는 베를린시가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10년 이상 기업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장기 연구로 기술 혁신을 돕고 있다. 지멘스, SAP 등이 주요 고객이다.

ZIB는 데이터 중심 고성능컴퓨팅(HPC) 연구에 특화돼 있다. 냉난방용 천연가스 배관 최적화 문제는 ZIB가 데이터 분석을 통해 풀어낸 대표 사례다. 현재 독일에 설치된 2만여㎞ 천연가스 배관은 구축된 지 100년 가까이 지났다. 독일은 러시아와 노르웨이에서 나오는 천연가스가 유럽 전역으로 퍼지는 중간 통로(허브)다. ZIB는 신규 배관 설치 없이 가스 공급과 분배를 최적화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를 위해 1194개의 배관 입·출구, 6247개의 파이프, 3694개의 밸브, 41개의 콤프레서(고압축 시설) 등 독일 내 모든 배관 네트워크 정보를 분석했다. 화력발전소 가동 연료로 쓰이는 천연가스양 등도 감안했다. 선형대수학 기법인 ‘혼합 정수 비선형계획법(MINLP)’ 등을 사용해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무려 3경(京) 개의 가능한 모델(경우의 수)이 나왔다. 이 중 1차로 20만여 개를 추린 뒤 최종적으로 1285개가 지금보다 가스 송수신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경로로 분석됐다. 토르스텐 코흐 ZIB 대표(베를린자유대 수학과 교수·사진)는 “배관을 새로 깔려면 최대 10억유로(약 1조3000억원)가 들지만 ZIB의 연구로 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며 “현존하는 모든 수학적 최적화 기법과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써서 얻은 성과”라고 설명했다. ZIB는 독일의 모든 천연가스 배관 내 수소 함량을 10% 이하로 제어하는 AI 알고리즘도 개발할 계획이다. 배관 내 수소 함량이 10% 이하면 폭발 사고 위험이 ‘제로(0)’에 가깝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베를린=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