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기업 800조원 '코로나 稅혜택'…재정적자에 증세 후폭풍 우려

입력 2020-05-17 18:30
수정 2020-05-18 01:06
코로나19발(發) 불황에 직면한 미국 기업들이 줄줄이 세금 납부를 미루고 있다. 세액공제, 세금환급을 포함한 미국 기업들의 세제혜택 규모가 2년간 800조원에 이를 것이란 분석까지 나온다. 정부가 코로나발 충격을 덜어주기 위해 기업들에 추가적으로 각종 세제혜택을 준 결과다. 하지만 세수가 급감하면서 정부도 고민에 빠졌다.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더 풀어야 하는데 재원이 부족해서다. 미국뿐만 아니다. 재정적자 후폭풍으로 세계 각국에서 세금 인상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각국 정부 기업 세제혜택 확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미국 상장사 50여 곳이 28억달러 규모의 세제혜택을 받았다. 월트디즈니, 아메리칸항공, 멕시코음식 프랜차이즈 치폴레, 정유사 발레로에너지와 마라톤페트롤리엄 등은 그 규모가 각각 1억달러가 넘는다. 코로나19로 극장문을 닫아야 했던 영화관 운영사 AMC엔터테인먼트는 예상 세금환급액이 1900만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미국 의회 합동조세위원회(JCT)는 미 기업들이 올해와 내년에 총 6500억달러(약 798조원) 규모의 세제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했다. 세금환급, 납세유예, 세액공제를 합친 금액이다. 이는 미국 연방정부가 2019회계연도(2018년 10월~2019년 9월)에 거둬들인 법인세 2300억달러의 세 배에 가깝다. 2020회계연도의 첫 4개월(지난해 10월~올 1월)의 전체 세수인 1조1800억달러의 절반을 웃도는 규모다. 특히 코로나19로 올해 적자를 본 기업들은 내년부터 세금환급 신청에 나설 예정이다. 코로나19 충격이 더 길고 강해질수록 기업들의 세금환급 요청액도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3월 미국 재무부는 코로나19 여파를 반영해 연방세 납세일을 기존보다 3개월 유예된 7월 15일로 조정했다. 당시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세금환급이 필요한 기업은 바로 신청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납세유예로 단기유동성에 숨통이 터졌다는 반응이다. 존 하텅 치폴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가장 간절하게 돈이 필요한 시기에 세제혜택을 통해 현금을 더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연방세 납세일 추가 연장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각국 정부의 추가 세제혜택은 미국뿐만이 아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올 1분기 코로나19 피해 기업 등에 세금과 전기 등 공공요금을 3182억위안(약 55조원) 감면했다.

재정적자 확대와 세금인상 논란

각국 정부는 세제혜택을 놓고 고민 중이다. 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 올해 지출규모는 커졌지만 세수를 늘릴 방법은 마땅치 않아서다. 이미 재정적자 공포는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연방 재정적자 7380억달러를 내며 역대 최대 기록을 세웠다. 코로나19 때문에 지난달 세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 줄어들고, 지출은 161% 급증했기 때문이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2020회계연도 재정적자를 3조7000억달러로 추산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의 올해 재정적자가 3370억파운드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럽연합(EU)의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은 최근 올해 세수 예상치로 7178억유로를 제시했는데 지난해 11월에 내놓았던 수치(8164억유로)보다 12% 줄었다. 독일은 내년부터 4년간 연간 세수가 5000억유로대에 머물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정적자가 확대되면서 세금 인상이 각국 정부의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미국에선 이미 법인세율 논란이 시작됐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21%에서 28%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7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낮춘 것을 겨냥한 것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법인세 최고세율이 28~29%까지 올라갈 가능성을 언급했다. 부유세 논쟁도 불붙고 있다. 대니얼 마코비츠 예일대 법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미국의 상위 5% 가구가 보유한 자산에 세율 5%를 적용하면 2조달러를 확보할 수 있다”며 부유세 도입을 주장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