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스마트 물 사회를 꿈꾸며

입력 2020-05-17 18:33
수정 2020-05-18 00:14
올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전자쇼 ‘CES 2020’에서는 한국의 대학,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에서 발굴한 스타트업이 약진했다. 물론 프랑스, 이스라엘같이 짜임새가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다양성만큼은 돋보이기도 했다. 이제 CES는 가전의 테두리를 벗어나 첨단기술의 전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가전 없는 가전쇼랄까.

눈에 띄는 전시 중 하나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수증기를 포집해 마시는 물로 만드는 기술로, 이 기술을 선보인 기업은 혁신상을 받았다. 모델도 다양해서 큰 것은 학교 또는 작은 마을의 식수로 충분한 양을 원할 때 바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라스베이거스가 사막 기후라서 공기 중 수분 함량이 적은데도 이 기계의 수도꼭지에서 물이 줄줄 나와 사람들이 줄 서서 물을 마시곤 했다. 전원으로 태양광을 쓰면 아프리카 오지, 중동의 사막에서도 오염되지 않은 물을 공급할 수 있는 ‘포용적 과학기술’이어서 더욱 인기를 끌었다.

물이 없으면 사람은 생존할 수 없다. 깨끗한 물을 충분히 구할 수 없어 해마다 많은 수의 사망자가 지구 곳곳에서 발생한다. 몇 시간을 걸어서 물을 길어오느라 학교에도 못 가는 어린이들이 아직도 아프리카엔 많다고 한다. 지금까지 지하수 개발, 빗물 저장, 해수 담수화 같은 방법이 총동원됐지만 공기 중 수증기 포집과 같이 세계 어디서나 가능한 방법이 아니어서 물 부족 문제는 늘 글로벌 이슈이곤 했다.

품질 좋은 값싼 물이 풍부한 한국은 축복받은 나라임에 틀림없다. 기후변화, 하천오염의 문제가 있지만 적절한 강수량, 관개시설로 큰 어려움을 모른다. 특히 석회암이 많아 수돗물을 마음놓고 마시지 못하는 유럽의 국민들에게 한국의 수돗물은 부럽기까지 하다. 그래서일까, 물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한국은 매우 부족한 편이다.

우리나라 물 생산, 유통, 소비를 보면 전기, 통신, 에너지에 비해 매우 단순한 구조를 갖고 있다. 상품의 종류도 획일적이다. 마트에서 사 먹는 생수마저도 생산방식 및 유통, 품질이 다양하지 못하고 획일적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에 대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무엇이 있을까. 수증기 포집에 의한 물 생산을 뛰어넘을 아이템은 어떤 것일까. 먹는 물, 농공업용수 분리 생산, 의료, 미용용 물 생산 등 과학기술에 기반한 맞춤형 물 생산과 공급, 과금 방식을 개발해 스마트시티에 전면 도입하면 어떨까. 나아가 물 온도, 압력, 첨가물 조절, 재활용 여부를 실시간으로 조절하는 물 셋톱박스를 집집마다 둔다면 물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동시에 신산업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물의 유통, 소비에 대한 세밀한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인공지능을 적용하면 소위 스마트 물 사회가 곧 도래하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