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코로나로 사회시스템 바꾸는 첫 나라 되나..9월학기제 도입 '성큼'

입력 2020-05-17 14:18
수정 2020-05-17 14:2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3달째 각급 학교가 휴교 중인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9월 학기제 도입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개학시기를 9월로 옮겨 장기간의 휴교로 부족한 수업일수를 보충하고 이 기회에 주요 7개국(G7) 가운데 유일하게 4월 학기제인 학사일정을 다른 나라와 맞추겠다는 것이다.

◆1차 아베 내각 포함 대학주도로 4차례 시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전국 47개 지방자치단체 중 39개 지역의 긴급사태를 우선 해제하겠다고 발표한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9월 학기제는 유력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같은 날 문부과학성 등 관계 부처 공동 회의에서는 9월 학기제 도입에 따라 학교교육법, 사법시험법, 국민연금법 등 33여개의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논의됐다. 도입에 필요한 예산은 5조엔(약 57조원)으로 추산됐다.

각급 학교에 휴교령을 내린 지난 3월부터 일본 정부가 이미 9월 개학을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실시해 온 사실도 공개됐다. 정부 차원에서 9월 학기제 도입을 차곡차곡 진행해 나가는 모양새다. 다음달 초 도입하기로 결론이 나면 일본 정부는 올 가을 임시국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코로나19 이후 기업 운영방식이나 생활양식의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사회 시스템 자체를 뜯어고치는 나라는 일본이 처음이다.

일본 언론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일본인의 55% 안팎이 9월 학기제 도입을 찬성했다. 20~30대 젊은 층의 찬성비율이 60% 이상으로 특히 높았다.



일본은 지난 30여년간 네차례에 걸쳐 9월 학기제 도입을 추진했다. 아베 총리는 1차 집권기인 2007년에도 가을 학기제 도입을 추진한 적이 있다. 2011년에는 도쿄대와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이 공동으로 9월 학기제 도입을 추진하기도 했다. 네 차례 모두 대학의 학기제를 변경하는 방안이었지만 호응도가 낮아 불발됐다.

다섯 번째로 시도되는 9월 학기제는 대학 주도가 아니라 의무교육 대상인 초중고교의 필요에 의해 추진되는 것이어서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입시다. 일본 정부가 전국적으로 코로나 긴급사태를 선언한 이후에도 상당수 사립학교와 지방 학교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두 달째 휴교 중인 대도시, 국공립 고교의 고3 수험생과 학부모는 불안할 수 밖에 없다.

◆해외인재 日 기업·대학 오려면 1년 공백

부족한 수업일수를 맞추기 위해 실시한 온라인 수업은 도리어 학력격차를 키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온라인 수업 설비를 갖추지 못한 가정이 많고, 지역격차도 심각하다. 동시쌍방향형 온라인 수업이 가능한 지자체가 5%에 불과하다. 학기를 일괄적으로 5개월 뒤로 늦추자는 논의가 본격화한 배경이다.

해외 유학생 및 외국인 인재 유치가 쉬워지고 일본 학생들의 해외유학이 늘어나 국제화가 진전되리라는 기대도 9월 학기제가 지지를 받는 이유다. 일본의 4월 입학제는 오랫 동안 해외 인재 유치의 장애물로 지적돼 왔다. 6월에 졸업하는 미국과 유럽의 인재들이 일본의 대학이나 기업에 들어오려면 이듬해 4월까지 1년여 동안 공백을 감수해야 한다.

군 입대 등의 이유로 코스모스졸업(2학기가 시작하기 직전 늦여름에 하는 졸업)이 드물지 않은 우리나라와 달리 대부분의 일본 대학은 100년 넘게 '4월 입학, 3월 졸업'으로 고정돼 있다. 박종후 돗쿄대학 국제교양학부 특임준교수는 "게이오대, 와세다대 등 학기제를 도입한 대학이 있지만 '코스모스졸업은 학점을 못따서 제때 졸업을 못한 것'이라는 이미지가 여전히 강하다"고 말했다.

학사일정의 경직성은 일본 기업들이 매년 4월 대학졸업생을 한꺼번에 채용하는 일괄채용 제도의 산물이다. 해외 인재 유치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는 일본 기업들이 상시채용 제도를 적극 도입하고 있어 4월 학기제를 고수할 이유도 사라지고 있다.

대학 경쟁력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중국의 해외유학생수는 연간 93만명으로 매년 5%씩 늘고 있다. 반면 일본의 유학생은 3만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쿄대와 교토대 두 곳 만이 세계 100대 대학에 들어가는 건 유학생수와 외국인 교직원수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재정의 상당 부분을 유학생에 의존하는 사립대학 재정에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 605개 사립대의 36%가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지만 일본 대학은 전세계 유학생의 3%(16만명)만 유치하고 있다.

◆33개 법 개정·5조엔 필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57조원에 달하는 비용과 30여개에 달하는 법률을 바꾸는 것도 과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사립학교의 재정 문제다. 일본사립학교진흥·공제사업단에 따르면 일본 사립대학의 연간수입 3조4314억엔에서 수업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80%(2조6563억엔)에 달한다. 학기를 5개월 뒤로 늦추면 1조엔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된다. 다나카 아이지 와세다대 총장은 니혼게이자이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사립학교의 20~40%가 도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학교가 손실을 보전하려 수업료를 올리면 학부모들의 부담이 커진다.

9월 학기제를 도입하면 첫해 17개월분의 입학생이 초등학교에 몰린다. 통상 입학생수의 1.4배에 달하는 학생을 감당할 교실과 교직원을 확보하는 것도 과제다. 아사히신문은 9월 학기제 도입으로 교원 2만8000명이 부족할 것이라고 17일 보도했다.

일본이 9월 학기제를 도입하면 북반구에서 봄 학기를 채용하는 주요국은 우리나라와 인도 정도만 남는다. 호주와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1~2월), 아르헨티나(3월) 등 남반구 국가들은 여름철인 1~3월 학기제를 시행하는 나라가 많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