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더비 '온라인 경매' 두달 만에 850억 판매 신기록

입력 2020-05-15 17:16
수정 2020-10-12 19:08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여러 산업이 전방위 타격을 입은 와중에도 세계 예술시장은 뜻밖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온라인 시장에서 새로 유입되는 소비자가 늘고 판매 신기록이 나오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갤러리와 현장 경매장이 폐쇄되고, 사치품 수요가 크게 줄어들어 업계가 고사 직전까지 내몰릴 수 있다는 당초 예상과는 정반대 모습이다.


재택 늘면서 예술품 수요 폭증

글로벌 경매회사인 소더비는 지난 3월부터 이달 8일까지 온라인 경매를 40차례 열어 매출 7000만달러(약 857억원)를 냈다. 작년 한 해 동안 온라인 경매 129회를 통해 벌어들인 8000만달러(약 980억원)의 87.5%를 두 달 남짓한 기간에 벌었다. 지난달엔 자사 온라인 경매 역대 판매액 기록을 두 번 갈아치웠다.

미국 1위 화랑인 가고시안갤러리는 지난 10일 영국 화가 세실리 브라운의 유화 한 점을 온라인으로 550만달러(약 67억원)에 팔았다. 이 화가의 작품 중 역대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이다. 가고시안갤러리는 3월 미국 유럽 홍콩 등의 갤러리 지점을 모두 폐쇄했지만 지난달 온라인으로 900만달러(약 1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고가 미술품 시장 얘기만이 아니다. 1만~1000만원 사이 중저가 미술품 거래를 주로 중개하는 온라인 플랫폼 아트스토어프런츠는 3월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9% 늘었다. 지난달엔 전년 동기 대비 매출 증가율이 133%로 뛰었다.

이 같은 미술품 시장의 온라인거래 활성화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재택근무와 사회적 거리두기 움직임이 길어진 여파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인테리어용 예술품 수요가 급증했다. 문화 욕구를 충족하려는 이들의 수요로 유명 갤러리나 경매사 웹사이트 접속률과 열람 시간도 늘었다.

15일까지 1주일간 온라인으로 열린 국제예술박람회 ‘프리즈뉴욕’이 대표적인 사례다. 로링 랜돌프 프리즈뉴욕 국장은 “올해 VIP 사전행사 첫 15분간 온라인 전시장에 접속한 이들이 작년 같은 때 오프라인 전시장을 찾은 이들보다 많았다”고 말했다. 하우저앤드워스는 이 행사에서 개막일 하루에만 거래액 약 500만달러(약 61억원)를 기록했다. 찰스 스튜어트 소더비 최고경영자(CEO)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외부 활동이 차단된 예술품 수요자들이 경매에 열을 올리면서 예상가를 열 배 이상 뛰어넘은 거래도 속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체투자·코로나19 자선경매 유행도 한몫

대체투자처로 예술시장을 찾는 이들도 늘었다. 각국 중앙은행이 경제 부양을 위해 앞다퉈 돈을 풀자 향후 화폐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서다. 글로벌 회계법인 딜로이트에 따르면 예술품은 대표적인 가치보존형 자산이다. 유가증권이나 원자재처럼 가격 변동성이 크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가격이 오른다.

미술 투자자문기업 아티문디그룹의 자비에르 룸브레라스 CEO는 “역사적으로 예술품은 전쟁이나 전염병 대유행 이후 인플레이션이 와도 가격 회복력이 컸다”며 “이 때문에 최근 예술품 투자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신규 고객이 늘어나는 이유도 있다. 코로나19 자선 경매다. 경매 수익 일부나 전부를 구호자금 등으로 내놔 소셜미디어 등에서 ‘착한 소비’ 유행을 타고 있다. 지난달 크리스티가 앤디워홀시각예술재단과 연 예술가 지원 경매는 총 낙찰품 기준 당초 낙찰예상가의 142%를 달성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선 소규모 경매업체들이 지역 병원 등을 후원하는 중저가 경매를 열고 있다.

기존 마니아층 수요도 많다. 블룸버그 자회사인 블룸버그퀸트는 지난달 “일부 자산가들이 평소보다 예술품 매입을 늘리고 있다”며 “어려운 시기에 예술인을 지원하는 일을 일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은 고가시장 꽁꽁…‘눈치 보여 못 사요’

한국 예술시장도 수요층 지평은 다소 넓어지는 분위기다. 서울옥션은 3월 한국화랑협회와 ‘힘내요 대구’ 자선 경매를 온라인으로 열었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당시 신규 유입된 회원이 평소 다른 경매보다 5배 많았다”며 “대체투자용 미술품을 찾는 수요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외국 시장과 큰 차이점도 있다. 예술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내 고가 예술시장은 최근 아예 움직이지 않는 모양새다. 중저가 예술품 수요가 늘어 예술 경매시장 낙찰률은 평소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낙찰 총액이 크게 줄었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미술품 경매 낙찰 총액은 약 230억원이었다. 작년 같은 기간(417억원) 대비 거의 반토막 났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한 갤러리 관계자는 “국내에선 예술품 투자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미국·유럽 등과 다르다”며 “자산가나 기업들은 ‘어려운 시국에 예술품에 큰돈을 썼다’는 비판을 받을까봐 아예 매입에 나서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