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이야기] 기술발전이 초래할 마찰적 기술실업과 구조적 기술실업

입력 2020-05-18 09:00

“인간은 기술의 단기 영향은 과대평가하고, 장기 영향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미래학자 로이 아마라의 말이다. 이는 앞으로 어떤 일이 나타날지 판단할 때 유용한 기준이 된다. 특히 기술 발전이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보는 과정에 많은 도움이 된다. 조급함에 빠져 단기적인 측면에 한정하지 않고 장기적인 영향까지 고려할 수 있는 긴장감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마찰적 실업과 구조적 실업을 살펴보는 일이 그것이다.

케인스의 기술적 실업

1920년대 케인스는 ‘기술적 실업’을 소개했다. 그는 노동력을 적게 쓸 수단을 발견하는 속도가 노동력의 새로운 쓰임새를 찾아내는 속도보다 빠른 탓에 발생하는 실업을 기술적 실업으로 정의했다. 케인스의 기술적 실업은 이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신기술의 도입은 어떤 분야에서 인간의 일을 대체했지만, 한편으로 다른 분야에서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밀고 당기는 힘의 균형이 일자리의 전체 수를 늘리는 결과를 낳으면서 신기술 도입에 따른 과도한 우려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많은 제조업 현장에서 자동화 수준이 상당히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유다.

마찰적 기술실업의 등장

마찰적 실업은 스스로를 실업상태에 둘 때 발생한다. 여기서 ‘마찰’이란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는 요인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는 기술이 마찰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술은 진보하지만, 일자리는 비례해 증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기술진보에 맞춰 노동시장의 상단으로 이동하기가 쉬웠다. 산업화 초기에 대부분의 업무는 육체노동이었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쓰던 낫을 버리고 내일 공장에 취업할 수 있었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계는 복잡해지고, 생산활동이 정교해지면서 보다 높은 기술을 가진 근로자들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 필요한 능력이 육체노동에서 인지능력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도입된 의무교육은 노동자들을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기술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더 높은 연봉을 받으며 기술에 발맞춰 성장하는 사람 역시 많았다.

기술과 인간의 경주는 어느 순간 기술이 압도적으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의무교육만으로는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웠고, 대학교 혹은 대학원 졸업장이 있어야 높은 연봉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오늘날 기술의 진화 속도는 보다 빨라져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진 사람 가운데 아주 일부만이 고임금 일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일자리의 양극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고임금·고숙련 일자리를 예전보다 늘렸고, 저임금·저숙련 일자리를 넘쳐나게 했지만, 많은 사람에게 직업을 제공했던 중산층 일자리가 사라졌다. 일자리는 있지만 내가 갈 수 없거나, 가고 싶지 않은 일자리만 남은 셈이다. 우리나라 청년층의 70%가 대학을 졸업했지만, 실업자 절반이 대학졸업자라는 사실은 오늘날의 일자리 양극화 현상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예다.

기술진화와 구조적 기술실업

마찰적 기술실업은 구조적 기술실업에 비하면 심각하지 않다. 이유야 어떻든 원하지 않지만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남아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패스트푸드점에서는 10대들이 주로 일했지만, 오늘날에는 종사자의 3분의 1이 대학졸업자라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기술 발전이 더 속도를 낸다면 기술에 의한 일자리 잠식은 심화될 수 있다. 즉, 대체되는 일이 기술로 보완되는 일보다 많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기술의 발전은 분명 인간의 생산성을 높이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기계보다 나은 조건일 때만 노동수요의 증가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내비게이션이 택시운전자의 생산성은 높이지만, 모든 자동차가 자율주행화된다면 내비게이션이 택시운전자의 생산성을 얼마나 높였는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느 순간 인간 노동자가 기계보다 부족해진다면, 신기술이 인간의 생산성을 아무리 높이더라도 노동수요로 이어지지 않을지 모른다. 장기적으로 기술로 인한 경제구조 변화가 노동수요 자체를 줄인다면 인간은 많은 영역을 기계에 내어줘야 할 것이다.

19세기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재화의 수요가 곧 노동의 수요가 아니다”는 말로 일의 본질을 설명했다. 재화의 수요로 발생하는 것은 재화 생산을 위한 업무 수요이다. 지금까지는 이를 인간이 맡아왔지만,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는 어떤 시점에는 기계가 대신할지 모른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역사가 알려주는 사실은 실업률이 상당한 정도일 때는 소득창출의 재원이 사라지는 현상 자체가 문제이지만, 15~20% 이상의 고실업률에 도달하면 일자리 외에 심각한 다른 문제들이 수반된다는 점이다. 실업률이 높았던 시기 많은 국가들과 달리 독일은 파시즘으로 이에 대응했다. 그저 먼 미래의 일로 고민을 미뤄둘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느껴지는 사안일수록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관심이 중요하다. 변화가 갑작스러운 이유는 수면 위만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구조적 변화가 현안으로 등장하기 전에 많은 고민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 포인트

코로나19 세계적 확산으로
비대면 서비스 빠르게 일상화
디지털 변화 유연한 적응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