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R프라퍼티즈(EPR)는 시가총액 2조2710억원 정도 하는 미국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다. 시총 100조원대 리츠가 있는 미국 증시에서도 비교적 생소한 종목이다. 하지만 지난 4월 한 달간 한국인들은 이 종목을 엄청나게 검색했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4월 세계에서 EPR을 가장 많이 검색한 나라는 한국이다. EPR이 매달 배당금을 지급한다는 사실과 주가가 연초 68달러대에서 3월 13.92달러까지 하락했다는 소식에 개인투자자가 대거 몰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글로벌 증시 폭락 이후 국내 증시에 대거 진입한 ‘동학개미’들이 해외 낙폭과대주를 찾아 미국 주식을 ‘직구’(직접구매)하는 ‘원정개미’로 나서는 것을 보여준 한 장면이다.
낙폭 과대주 쓸어담는 개미들
개인들은 3월 코로나19 폭락장에서 애플 아마존 등 우량주를 샀다. 4월 이후 방향을 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낙폭과대주로 대거 자금이 몰렸다. 4월 1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약 한 달 반 동안 26억837만달러어치를 순매수하는 동안 매수 상위에 올라 있는 EPR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미국 내 영화관과 놀이공원 등 엔터테인먼트 시설에 주로 투자한다. 방문객 감소로 임대료 지급능력이 떨어지자 주가는 연고점 대비 67.40% 폭락했다. 이 사실이 주식게시판과 유튜브에서 알려지면서 국내 투자자는 지난달 이후 EPR에 2366만달러를 쏟아부었다. 시가총액의 1.28%에 달한다.
원정개미들은 항공주도 사들였다. 델타항공과 보잉은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았다. 주가는 연고점 대비 각각 68.71%, 65.03% 하락한 상태다. 국내 투자자는 4월 이후 두 회사 주식을 각각 1억567만달러, 7960만달러어치 순매수했다.
세계 최대 크루즈선 사업자인 카니발도 원정개미들 사이에 화제였다. 카니발은 크루즈선이 코로나19의 주요 감염경로로 주목받으면서 모든 운항을 중단했다. 지난해까지 40~50달러대에서 거래되던 주식은 26년 만에 최저가인 8달러(4월 3일 종가)까지 급락했다. 국내 투자자들은 4월 이후 카니발 주식 3059만달러어치를 순매수했다.
원정개미들의 정보전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는 올 들어 미국 주식 42억9608만달러어치(약 5조2777억원)를 순매수했다. 불과 5개월 만에 지난해 전체 순매수액(24억567만달러)의 두 배에 달하는 주식을 샀다. 모든 사모펀드와 공모펀드 등 주요 기관투자가를 제외한 수치다.
개인들이 이처럼 미국의 우량주부터 낙폭과대주까지 다양한 주식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해외 주식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높아진 결과다. 유튜브와 온라인 주식게시판이 발달해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야간 미국 주식시장과 선물시장을 생중계해주는 일부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가 10만 명 이상이고, 매일 밤 실시간 방송 시청자 수가 1만 명이 넘을 만큼 인기다.
한 펀드매니저는 “펀드매니저들은 외부 자금을 운용하기 때문에 투자 종목 선정에 여러 제약이 많지만 개인은 제약이 없어 손실을 감수한 공격적인 투자가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상당수 종목 ‘위태로워’ 지적도
하지만 위험한 투자라는 지적도 있다. 원정개미들의 성적표도 그다지 좋지는 않다. 4월 이후 국내 투자자가 가장 많이 매수한 장난감 기업 해즈브로는 같은 기간에 주가가 12.17% 하락했다. 델타항공과 보잉은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모든 항공주 지분을 청산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4월 이후 주가가 각각 31.97%, 18.53% 폭락했다. EPR은 4월 임대료 연체율이 85%에 달하면서 월배당과 자사주 매입이 전면 중단됐다. 카니발은 부채 발행 및 증자를 통해 62억달러를 조달해 파산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주가는 횡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낙폭과대주를 매수해 반등을 기다리는 개인들의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주가뿐만 아니라 재무상태와 실적 전망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미국 주요 기업의 신용등급이 강등됐고, 2분기 실적 전망도 여전히 좋지 않기 때문이다. 강신규 한화자산운용 해외채권전략운용팀장은 “크루즈산업은 미국 소비재 산업 내 모든 업종 가운데 가장 코로나19의 타격이 크다”며 “당분간은 경기민감 및 코로나19 피해가 큰 업종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을 감안하고 투자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