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기부는 쉽고 쓰기는 어려운 코로나지원금

입력 2020-05-14 17:10
수정 2020-05-15 00:23
“기획재정부는 과장급 이상 간부들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이들의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기재부는 지난 13일 오후 예정에 없던 발표 자료를 내놨다. 그런데 공무원들의 ‘자발적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 석연찮았다. 과장들을 한자리에 모은 뒤 “코로나지원금을 기부하지 않을 사람이 혹시 있느냐”고 공개적으로 물어보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한 기재부 과장은 “형편이 여의치 않아 기부를 원하지 않았던 일부 과장도 어쩔 수 없이 동참했다”고 전했다. 다른 정부 부처의 과장은 “기재부가 ‘총대’를 메면서 다른 부처들도 동참하지 않으면 죄인이 되는 분위기가 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12일에는 ‘기부 피싱’(불법적으로 개인 정보를 알아내 활용하는 사기) 논란도 불거졌다.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코로나지원금) 신청 화면을 신청자가 자신도 모르게 ‘기부 동의’ 버튼을 누르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담당 부처인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카드사 서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코로나지원금 신청 화면과 기부 신청 절차를 한 화면에 넣도록 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여론의 비난이 쏟아지자 행안부는 부랴부랴 기부 신청 절차를 따로 표시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바꿨다. 지침 변경 후에도 카드사 홈페이지 접속은 여전히 원활했다.

코로나지원금 기부는 과도할 정도로 쉽게 돼 있던 반면 수령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 전화로 신청할 수 없는 게 대표적이다. 당초 카드사들은 인터넷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을 위해 자동응답시스템(ARS)으로도 신청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가 정부 반대에 가로막혔다. 이 때문에 노년층이 전염병 감염 위험에도 주민센터와 은행 점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비판 여론이 일자 정부는 14일 “사실은 ARS로도 신청받을 수 있도록 하라는 안내문을 오늘 발표할 예정이었다”고 했다.

필요한 곳에 쓰기도 어렵다. 소비 진작이라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 온라인 등 수요가 많은 곳에서 사용할 수 없다. 전통시장에서 코로나지원금으로 물건을 구입하면 평소보다 비싼 가격을 부르는 일도 잦다. 똑같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데 굳이 비싼 값을 주면 기분이 나빠지는 게 사람의 심리다. 동네 구멍가게와 대형마트 가격이 같은 담배 등을 대량 구매하는 데 재난지원금을 쓰는 소비자가 많은 게 당연하다.

“기부를 장려하는 노력의 반만이라도 받고 쓰기 편하게 하는 데 써달라”는 게 국민들의 하소연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기부 압박은 점점 심해지고, 수령의 편의성은 더디게 개선되고 있다. 코로나지원금이 경기 회복이 아니라 총선 승리를 목적으로 도입됐다는 국민들의 의구심이 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