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토지거래허가제, 이런 '꼼수' 나온다

입력 2020-05-14 09:04
수정 2020-05-14 10:13

정부가 서울 용산역 철도정비창 주변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할 방침을 밝히자 제도 보완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증여나 경매, 임대차계약을 통해 규제를 빠져 나가는 편법이 다시 유행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주택의 경우 지분을 기준으로 거래를 제한하다 보니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매·임차인 악용 우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용산 철도정비창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으려는 건 이곳의 개발사업이 인근 부동산시장에 미칠 파급력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간신히 진정시킨 집값이 다시 뛸 가능성조차 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신도시 등 택지를 제외하면 도심지에서 토지거래허가제가 시행되는 건 2009년 3월 이후 11년 만이다. 부동산을 거래할 때 시·군·구청의 허가를 받은 뒤 매매하는 게 골자다. 주거·상업·공업용지별로 땅의 목적에 맞게 이용할 때만 거래가 허가된다. 주거용지에 들어선 집을 살 경우 최대 5년 동안 실거주하겠다는 확약을 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취득가액의 7~10%를 과태료로 내야 한다.

예외규정도 있다. 대표적인 게 증여나 경매, 소송 등이다. 특히 경매를 활용해 토지거래허가제를 피해가는 ‘꼼수’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일반적인 거래가 쉽지 않은 만큼 고의로 임의경매 사유를 만든 뒤 매수 희망자가 직접 낙찰받는 방법이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대표는 “매수자가 매도인에게 돈을 못 받은 것처럼 꾸며 담보가등기 골격을 갖춘 뒤 경매로 넘기는 방법”이라며 “제3자가 낙찰받지 못하도록 주로 청구금액을 실제 부동산가격보다 높게 설정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설명했다.

임대차계약을 악용하는 것도 편법 가운데 하나다. 계약기간만큼 실거주 의무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개발을 전문으로 다루는 한 중개업소 대표는 “과거엔 임차인이 나간 뒤 전입하겠다는 조건으로도 허가가 이뤄졌다”며 “임대차계약기간을 길게 설정하는 방법으로 규제를 빠져나가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풍선효과’ 나타날까

토지거래허가 여부는 면적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주거용지의 경우 180㎡, 상업용지는 200㎡ 이상 땅에 대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건에 따라 기준면적의 10% 수준까지 줄일 수 있다. 용산 철도정비창 일대에 최소면적 기준을 적용한다면 주거용은 18㎡, 상업용은 20㎡가 되는 셈이다.

최소 기준에도 미달하는 소규모 지분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거용 부동산의 경우 주택면적이 아니라 딸린 토지의 면적을 기준으로 삼아서다. 예컨대 서부이촌동 일대 낡은 빌라들의 경우 용산 철도정비창 인근이지만 대지지분이 18㎡ 미만인 집이라면 토지거래허가제와 관계없이 거래가 가능한 셈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의 범위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규제 유무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과거 뉴타운 개발이 한창일 땐 이 같은 일이 흔했다. 아현뉴타운엔 토지거래허가제가 적용되지 않았지만 길 건너 북아현뉴타운엔 토지거래허가제가 적용됐다. 2차 뉴타운인 아현뉴타운은 서울시 조례에 따라 개발이 시작된 반면 3차 뉴타운인 북아현뉴타운은 ‘도시재정비촉진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재정비촉진지구 지정을 받아서다. 이 법에 따라 지정된 재개발구역은 2009년 3월까지 20㎡ 이상 지분에 대해 토지거래허가제가 적용됐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당시 시범지구로 지정됐던 장위뉴타운의 경우 16~18㎡짜리 빌라를 사야 한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며 “똑같은 일이 반복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토지거래허가 기준을 꼼꼼히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