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를 앞두고 오랜 경쟁 관계였던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손잡았다. 엔진 시대에는 후발주자였지만 전기차 시대에는 글로벌 시장의 리더가 되고 싶어 하는 현대차가 삼성SDI에 ‘배터리 동맹’을 제안한 게 계기였다. 시장은 반응했다. 두 회사의 협업 소식에 삼성SDI를 비롯해 배터리 제조 관련 기업(밸류체인) 주가가 일제히 급등했다.
원통형 배터리 공급?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13일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차세대 전기차용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 개발 현황과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삼성SDI는 이날 8.98% 오른 30만9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지금까지는 삼성SDI 배터리를 쓰지 않았다. 삼성과 현대는 오랜 기간 재계의 라이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력인 배터리 종류도 다르다. 현대·기아차는 파우치형 배터리를 쓴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주로 납품받는다. 삼성SDI는 각형 배터리와 원통형 배터리가 주력이다.
최근 전기차 시장이 열리면서 두 회사가 협업할 기회가 찾아왔다. 현대차는 전기차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배터리 플랫폼인 ‘E-GMP’를 개발하고 있다. 한 번 플랫폼을 만들어 대세가 되면 이 플랫폼을 다른 완성차 업체에 공급하는 것도 가능하다. 현대차는 여기에 파우치형 배터리뿐만 아니라 원통형 배터리를 쓰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원통형 배터리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곳은 테슬라다.
각형 배터리를 납품받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폭스바겐은 파우치형과 각형 배터리를 모두 사용한다. 현대차가 원통형과 각형, 파우치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면 배터리 공급처를 다변화해 공급 부족 사태가 오더라도 대응이 가능하다. 완성차 고객의 선택지도 넓어지기 때문에 E-GMP 플랫폼 경쟁력도 높아진다.
전고체 배터리 시대 수혜주는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삼성SDI와 현대차그룹 간 전략적 제휴가 성사될 경우 삼성SDI가 2025년 현대차에 공급 가능한 배터리는 20GWh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제품 생산량이 늘어나면 관련 기업으로 수혜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이날 동화기업(29.85%), 코스모신소재(23.1%), 에코프로비엠(14.97%), 일진머티리얼즈(8.01%) 등 관련 기업 주가가 급등했다.
이날 두 기업 최고경영진이 전고체 배터리를 주제로 대화했다는 소식에 관련 기업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에코프로비엠이다. 이 회사 주가는 지난 3월 19일 저점을 찍은 뒤 54% 올랐다. 전기차 배터리의 주행 거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양극재에서 니켈 함량을 높여야 한다. 에너지 밀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에코프로비엠은 하이니켈(니켈 비중 80% 이상) 양극재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차세대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시장에서도 성장이 가능하다. 에코프로비엠은 니켈 비중이 88%인 양극재를 상용화했고, 니켈 90%와 단결정 양극재, 전고체 배터리용 양극재를 개발 중이다. 주민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경쟁사 대비 하이니켈 경쟁력이 뛰어난 만큼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을 인정받아야 한다”며 “고객을 줄 세울 수 있는 회사”라고 평가했다.
씨아이에스는 전극공정 장비 전문 업체다. 중대형 전지 제조 설비에서 전극 공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30~40%에 달한다. 씨아이에스는 올해 1월 황화물계 고체 전해질 제조방법 특허를 등록해 전고체 배터리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포스코케미칼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포스코케미칼은 흑연 음극재를 주력으로 생산한다. 천연 흑연을 가공해 고속 충전에 유리한 인조 흑연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 제품이 상용화되면 기존 판매가의 두 배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될 경우 음극재가 기존의 흑연에서 리튬 메탈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주 연구원은 “포스코케미칼도 리튬메탈을 개발하고 있지만 공급 불확실성과 신규 투자는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