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의 선행지표'로 불리는 일본은행의 주가가 사상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13일 오전 일본은행 주가는 3만100엔에서 거래되고 있다. 1988년 12월 75만5000엔을 기록한 일본은행 주가는 1990년대 초반 버블(거품)경제 붕괴와 함께 추락, 올해 2월에는 3만엔선이 처음으로 무너졌다. 지난달 21일에는 2만5100엔까지 하락했으나 전날 5.6% 급등하며 간신히 3만엔선을 회복했다. 그렇다고 해도 최고점 대비 25분의 1 수준이다. 닛케이225 상장기업들의 평균 주가가 버블기에 비해 절반 정도 떨어진데 비하면 낙폭이 훨씬 크다.
◆주요국 유일의 상장(IPO) 중앙은행
일본은행은 주요국 중앙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다. 전세계에서 중앙은행을 기업공개(IPO)한 나라는 스위스와 벨기에 등 극소수다. 1949년 전후에는 도쿄, 오사카, 나고야 주식시장에 각각 상장돼 있었으나 차례로 상장폐지되고 현재는 자스닥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일간신문 주식란에도 일본은행의 주가가 매일 표기된다.
일본은행법에 의해 55%는 정부가 보유하지만 나머지 45%는 개인과 법인, 국적을 불문하고 매입이 가능하다. 일본 거래소의 최소 매입단위가 100주여서 일본은행 주식을 사려면 현재 시가로도 300만엔(약 3416만원)이 필요하다. 2019년 3월말 현재 개인이 40.3%, 금융기관과 공공단체 등이 각각 2.0%, 0.2% 보유하고 있다.
거금을 들여 일본은행 주식을 매입해도 주주로서의 권한은 거의 없다. 주주에게는 경영상 의사결정에 관여할 의결권이 주어지지 않고, 민간기업의 주주총회에 해당하는 출자자총회도 존재하지 않는다. 매년 봄과 가을 사업보고서를 받아볼 수 있는 정도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특례다. 연간 배당은 1주당 5엔으로 고정돼 있다. 매매가격 기준 수익률은 0.02%로 현재 일본의 정기예금과 거의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행 주식을 거래하는 개인투자자가 있는 것은 일본 중앙은행 주식을 보유한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도쿄의 한 남성 경영자는 요미우리신문에 "일본은행 주주라는 프라이드는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투자목적으로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자택 액자에 걸어두는 사람도 있다. 2009년 도쿄증권거래소가 모든 거래증권을 전자화할 때도 일본은행 주식만은 예외로 뒀다. 일본은행 증권을 대대로 물려주는 개인주주들을 위한 배려다.
◆30조엔 ETF 매입 손실 '고스란히'
일본은행 주가는 흔히 '일본경제를 반영하는 거울'로 평가된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취임한 2013년 3월, 일본은행 주가는 9만4000엔으로 3개월 만에 3배 뛰었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반짝 상승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가토 이즈루 도탄리서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요미우리신문에 "구로다 총재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경제회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실망감이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상장기업으로서 일본은행의 재무상태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일본은행은 2010년 이후 금융완화정책의 하나로 30조엔 규모의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입해 왔다. 그 결과 일본은행은 간접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일본 상장기업 전체의 최대주주가 됐다. 주가가 급락하면 일반은행이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로다총재는 지난 3월 닛케이225지수가 1만9500엔을 하회하면 평가손실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닛케이225지수는 3월11일부터 10영업일을 제외하고 줄곧 1만9500선을 밑돌았다. 평가손실이 발생하면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충당금 규모가 커지면 일본은행이 적자에 빠져 연간 수천억엔 규모의 국고납부금을 못낼 수도 있다. 국가재정에도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대규모 적자를 이어간다고 해서 파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증시 전문가들은 사상 최저 수준인 일본은행의 주가가 일본경제의 험난한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