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바이오팜 뇌전증 신약 미국 출시…K바이오 역사 썼다

입력 2020-05-12 17:23
수정 2020-05-13 01:05
“좀 더 고생하더라도 ‘SK 브랜드’를 직접 미국 시장에 알려야 한다.”

조정우 SK바이오팜 대표는 평소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를 미국에 직접 판매해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취지다. 조 대표는 “18년간 노력한 제품의 결실을 우리 손으로 거둘 수 있어야 한다”며 “영업이익 측면에서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당부는 현실이 됐다. SK바이오팜이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허가에 이르는 신약 개발 전 단계를 미국에서 성공한 데 이어 직접 영업망을 구축해 판매에 나섰다.

독자 허가·판매로 새 길 연 SK

11일부터 엑스코프리 판매를 시작한 SK바이오팜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은 신약을 2개 보유한 국내 첫 기업이 됐다. 미국 재즈파마슈티컬스에 기술수출한 수면장애 치료제 솔리암페톨은 작년 3월 FDA 관문을 통과해 7월부터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제품 개발 과정도 국내 다른 기업과 달랐다. 자금력과 경험이 부족한 국내 제약·바이오회사는 신약 개발 도중 다국적 제약사에 기술을 이전하는 일이 많았다. 신약이 최종 허가를 받아도 매출의 5~10% 안팎 로열티만 받는다. 제품 개발에 대한 위험을 줄이는 만큼 이익이 줄어드는 구조다.

SK바이오팜은 남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 대신 18년 동안 자금과 인력, 시간을 쏟아부었다. 판매허가 신청을 위해 작성한 자료만 230여 만 쪽에 달한다. 외부 투자도 없었다. SK그룹 차원에서 총력 지원했기 때문이다. SK바이오팜은 SK의 100% 자회사다. 노승원 맥쿼리투신운용 펀드매니저는 “기술수출을 하지 않아 매출의 50% 안팎을 영업이익으로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판 구축해 이익률 높여

SK바이오팜은 지난해 11월 FDA로부터 엑스코프리 허가를 받은 뒤 한 차례 더 모험을 했다. 미국 직접 판매 방식을 택한 것이다. 미국 내 직판체제는 SK라이프사이언스가 맡았다. 이를 위해 2011년부터 치밀하게 준비했다. 조 대표는 “SK 브랜드를 미국 시장에 널리 알릴 기회”라며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설득했다. 엑스코프리의 허가 가능성조차 불투명하던 시기다. 최 회장은 조 대표의 설득에 과감히 투자했다. 노 펀드매니저는 “판매 대행을 선택했다면 영업이익이 현재의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재 영입도 과감했다. 2016년 미국 자회사인 SK라이프사이언스를 통해 최고상업화책임자(CCO)인 세비 보리엘로를 영업했다. 그는 다국적 제약사 존슨앤드존슨의 뇌전증 치료제 토파맥스의 성공적인 출시를 이끈 베테랑이었다.

현재 그는 글로벌 마케팅 전략과 시장분석, 영업망 구축 등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에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지난해 11월 FDA 허가 당시 “2020년 4~5월 제품 판매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약속은 지켜졌다. 올해 초 영업직원 110명을 뽑은 데 이어 제품 마케팅과 교육, 전략 수립 등을 온라인으로 차근차근 진행했기 때문이다.

상반기 상장 그대로 추진

SK바이오팜은 상반기 상장 계획도 그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기업공개(IPO) 일정을 하반기로 연기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계획대로 완주하겠다는 의지다. 최근 두 달간 상장한 회사가 없어 투자자의 관심이 주목되는 데다 신약 출시 이벤트로 흥행몰이를 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IPO 시장도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1일 코스닥 상장을 위해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수요예측을 한 임상시험수탁회사(CRO) 드림CIS는 926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코로나19로 해외 IR(기업설명회) 로드쇼가 불가능하고 공모 규모가 크다는 점은 부담이다. SK바이오팜의 기업 가치는 5조원 이상, 공모 규모는 1조원대로 전망된다.

김우섭/전예진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