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태양광 드라이브에…전문가들 '오리 출현' 경고

입력 2020-05-11 17:54
수정 2020-05-12 01:35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급증으로 전력 수요 그래프에 오리가 나타나면 안정적 전력 수급이 어려워질 수 있다.”

올해부터 2034년까지 15년간의 에너지 수급 방안을 담은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이 지난 8일 공개되자 전력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오리의 출현’을 경고하고 나섰다. 초안을 마련한 민간전문가 자문기구인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분과위원회’가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반영해 2020년 15.1%인 신재생에너지 설비 비중이 2034년 40%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 계기가 됐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 때 전력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덕 커브(duck curve)’ 현상이다. 덕 커브 현상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날씨에 따라 과잉발전하거나 과소발전하면서 석탄화력, 원전, 액화천연가스(LNG) 등 다른 발전원의 전력 수요(발전 필요량) 그래프가 출렁이는 것을 말한다. 해가 떠 있는 낮에는 재생에너지를 제외한 나머지 발전원의 전력 수요가 낮은 상태를 유지하다가 해가 진 이후 급상승하는 모양이 오리의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미국 캘리포니아 전력계통운영기구(CAISO)에서 붙인 이름이다.

덕 커브 현상은 전력 운영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원전, 석탄화력발전소, LNG 발전소는 재생에너지의 과잉 및 과소발전에 따라 바뀌는 전력 수요에 맞춰 쉽게 발전을 멈췄다 재개할 수 없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미국 전력청도 “덕 커브 현상이 심화되면 전력 가격 상승을 초래하고 블랙아웃(대정전)에도 취약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생에너지 사용이 증가하면서 덕 커브 현상에 따른 피해도 속속 발생하고 있다. 한국보다 태양광발전 비중이 높은 독일은 2015년 유럽 전역에 걸친 개기일식이 일어나자 전력 소비가 많은 알루미늄 제련소 등에 전력 사용량을 일시적으로 줄이라고 요청했다.

국내에서도 전력거래소가 바람이 많이 부는 날 과잉발전을 막기 위해 제주도 풍력발전소들에 ‘전력 생산을 멈추라’고 상한 제약을 걸고 있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분과위원회가 제주수급소위원회를 따로 두고 제주 사례를 집중적으로 참고한 이유다.

유승훈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분과위원회 위원장은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에 덕 커브 현상이 가장 큰 걱정거리인 것은 사실”이라며 “이를 보안하기 위해서는 양수발전소 등 재생에너지를 뒷받침해줄 발전원은 물론이고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에 과잉발전된 전력을 저장해뒀다가 꺼내 쓰는 기술 등 대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