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 '보상소비' 훈풍에도 민간 기획사들 울상인 이유는?

입력 2020-05-11 17:54
수정 2020-05-12 10:32
이달 들어 국공립 공연장들이 다시 문을 열고, 관람권 예매가 증가하는 등 공연계에 훈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의외의 소식이 잇달아 전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관람권이 일찌감치 모두 팔린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틀(13일)과 뮤지컬 ‘레베카’의 성남아트센터 공연(8~10일)이 전격 취소된 것이다.

취소 사유는 정부의 생활방역 지침인 ‘좌석 간 거리두기’를 할 수 없어서다. 손열음 리사이틀은 연주자가 관객 안전을 우려해 자발적으로 취소했다. ‘레베카’ 공연은 개막을 불과 나흘 앞두고 무산됐다. 정부의 생활 방역 지침에 따라 성남아트센터가 기획사에 지그재그식으로 한 좌석씩 띄어 앉는 ‘거리두기 좌석제'를 요청했고, 이미 매진된 좌석을 나누는 게 불가능한 기획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공연장은 ‘공연 불가’를 통보했다. 이를 두고 공연계에서는 ‘매진 공연의 역설’이라는 말이 나왔다.

생활방역 체제로 전환된 이후에도 여전히 공연 올리기가 쉽지 않은 민간 기획사들은 11일 ‘거리두기 좌석제’ 유예를 요구하고 나섰다. 클래식·국악·무용 등 순수 공연예술 기획사들의 단체인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거리두기 좌석제를 일괄적으로 클래식 공연에 적용하면 티켓 판매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민간 공연 기획사는 공연을 하지 못한다”며 “이를 민간 공연에 유예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다면 정상적인 공연예술은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민간 공연장을 주로 사용하는 연극과 뮤지컬 등은 거리두기 좌석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관객의 우려를 감안해 자발적으로 거리두기를 시행하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방역 지침을 철저히 준수하며 공연을 한다.

클래식·국악·무용 등 순수 공연예술은 사정이 다르다. 협회에 따르면 순수 공연 매출의 90% 이상이 유료 관객으로부터 나온다. 이들 공연은 주로 국공립 공연장을 대관해 열린다. 이미 예매를 시작해 상당수 매표가 이뤄진 공연들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좌석을 거리두기로 다시 배치할 수도 없을뿐더러 관람권 가격을 공연장 대관료 등을 감안해 책정했기 때문에 객석 절반이 차더라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공연을 2회로 늘려 매진된 공연의 관객을 나누거나 공연 자체를 연기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요 공연장의 올해 1년치 대관 예약은 이미 작년에 끝난 데다 공연이 취소돼 빈자리가 나와도 기존에 계약했던 기획사는 후순위로 밀린다. 공연계 관계자는 “정규 예약 목록에 이름을 올렸던 기획사에 또 공연장을 빌려준다면 특혜 시비가 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상황이 이런데도 이달 말과 다음달 열리는 클래식 공연의 상당수가 거리두기 좌석제가 아니라 이전대로 매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기 공연의 경우 이미 매진되기도 했다.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공연이 임박할 때까지 코로나19 사태가 급격히 호전되지 않는다면 ‘매진 공연’ 취소와 환불이 되풀이될 우려가 크다”며 “조속히 정부와 공연장, 기획사들이 모여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