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처럼 K경제 일으키려면…규제 확 풀어 기업인들 뛰게 해야

입력 2020-05-11 17:27
수정 2020-05-12 02:01

“파괴적인 혁신을 통해 저렴한 가격에 좋은 제품을 파는 생산자는 소비자와 함께 승리하고, 비효율적인 생산자는 길을 비켜주는 게 이치다. 하지만 경쟁에서 진 사람들은 항상 정치권력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

필 그램 전 미국 상원의원이 지난 5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실은 기고문의 일부 내용이다. 한국의 기업인, 특히 혁신 스타트업 창업자에겐 이 내용이 유독 아프게 다가왔다고 한다. 택시업계와 정치권이 멈춰 세운 ‘타다’가 떠올라서다. 장병규 전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최근 페이스북에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한 이유를 밝혔다. “소비자들이 그토록 이용하고 싶었던 서비스를 멈추게 한 국가의 전 4차산업혁명위원장으로서 국민과 미래 세대에 죄송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부는 ‘K방역’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 회복에서도 세계의 모범이 되겠다고 공언한다.

하지만 이런 비전이 실현되려면 혁신을 촉진할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업의 혁신과 창조적 파괴를 가로막는 수많은 규제가 여전히 겹겹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규제 왕국’ 오명 벗어야

한국의 노동·환경·영업 규제는 세계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촘촘하다. 크리스토프 하이더 주한 유럽상공회의소 회장이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unique) 규제가 많은 ‘갈라파고스 규제’ 국가”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을 정도다.

경제계는 한국을 ‘기업하기 힘든 나라’로 만든 규제를 크게 세 갈래로 분류한다. 먼저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다. 업종과 업무에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주 52시간 이내 근무를 강제하는 게 대표적이다. 국내 5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폭발할 보복소비는 세계 시장 점유율을 늘릴 절호의 기회”라며 “기업들이 시장 공략 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52시간 근로제부터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 개혁은 거창한 구호보다 당장 필요한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원격의료와 조제를 금지하고, 배아(胚芽)연구를 제한하는 것도 비슷한 바이오·헬스산업 역량을 갖춘 국가에선 찾아보기 힘든 규제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공무원은 “배아 연구를 이용한 치료를 받으려면 일본에 가야 하는 상황이 개탄스럽지만 시민단체 반발이 워낙 거세 규제를 풀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경쟁력 약화 부를 규제 재고해야

정부의 규제 정책이 쉽게 뒤집히는 것도 경영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지주회사 규제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1999년 지주회사 제도를 도입한 이후 지속적으로 세제 혜택을 주면서 지주회사 전환을 장려했다. 투명한 지배구조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공정경제 성과 조기 창출 방안’을 발표하면서 하나의 손자회사를 여러 자회사가 공동 출자하는 것을 금지해 지주회사 규제를 강화했다.

여기에 더해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큰 규제들의 추가 도입도 예고돼 있다. 지난달 총선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다중대표소송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협력이익공유제 등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다중대표소송제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악용되는 등 각 법안이 큰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는 규제는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 관계자 설득할 용기 필요

정부도 경제계가 호소하는 규제의 문제점을 모르는 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혁신성장이라는 구호와 규제 샌드박스 등 정책을 통해 규제 완화를 강조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번에는 정말 될까”라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로 오프라인 유통업이 초토화되고 인력 구조조정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도 정부와 정치권은 오히려 복합쇼핑몰 규제 강화를 검토하고 있다.

대통령 등 국가 리더에겐 단기적으로 비판받더라도 국민을 설득할 용기가 필요하다. 규제 혁파가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얻게 된 ‘코리아 프리미엄’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도 이번에야말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규제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결국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내고 고용을 창출하는 건 기업 등 민간 경제주체”라며 “잠재성장률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을 돌파하려면 규제 합리화를 통한 생산성 제고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