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29일(07:06)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기업구조조정 법률자문 명가'로 불리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활동이 요즘 부쩍 분주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들의 도산 우려도 커졌기 때문이다.
태평양은 5대 대형 로펌 중 가장 먼저 '위기진단대응본부'를 설치하며 대응에 나섰다. 20년 넘게 기업 구조조정 자문을 맡아온 기업구조조정팀이 있었기에 발빠른 대처가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최근 EMW, 최단기 P플랜 인가 성공
"한달 걸릴 작업을 열흘 만에 끝낸 건 태평양의 전문성과 팀원들의 노력 덕분입니다."
기업구조조정팀 팀장 박현욱 변호사는 2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코스닥시장 상장사 EMW가 최근 사전회생계획안(P플랜)을 4주만에 인가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EMW 법률대리인인 태평양이 사전회생계획안을 준비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열흘 가량이었다. 일반적으로 사전회생계획안 작성에 최소 한달 이상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사천리로 관련 작업이 진행된 것이다. 기업 회생 분야에서 태평양의 전문성과 노하우, 팀원인 변호사들의 열성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법원도 신속하게 작성된 사전회생계획안을 검토한 뒤 채권자관계인집회 일정을 4주 뒤로 잡았다. 채권자들은 압도적인 동의율로 화답했고, 법원의 최종 인가까지 받아낼 수 있었다.
박 변호사는 "EMW를 계기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는 법원의 간섭이 심하고 지지부진하다'는 기업인들과 채권은행의 부정적 인식이 해소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채무자기업 대리'가 진짜 구조조정전문가
EMW 성공의 원인으론 태평양의 기업구조조정 법률자문사로서의 오랜 업력을 우선 꼽을 수 있다. 태평양은 외환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1999년 대형 로펌 중 처음으로 기업구조조정 전담팀을 만들었다. 현재 박 변호사를 팀장으로 파트너변호사 10명 등 약 20명의 전문변호사들로 구성돼있다.
기업구조조정팀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최승진 변호사는 "1998년 외환위기에 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는 동안 태평양 변호사들이 관여하지 않은 기업 구조조정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라고 설명했다. 실제 태평양은 대우그룹(대우자동차), 신세기통신, 오비맥주, 하이닉스, 대우조선해양, STX조선해양 등 수많은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 참여했다.
특히 주요 기업구조조정 사건들에서 채무자기업 측을 대리한 비중이 90%를 넘는다. 최 변호사는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는 금융채권단부터 개인 상거래채권자 등까지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있다보니 그들 중 어느 한쪽만 대리해도 '구조조정에 관여했다'라고 얘기하기 쉽다"면서 "그러나 태평양은 처음부터 채무자기업을 도와 인력구조조정, 재무구조 개선 등 갖가지 난제를 해결하고 턴어라운드(실적개선)에 도움을 준 수임 건수가 압도적"이라고 자부했다.
최 변호사는 마힌드라의 쌍용자동차 인수(2010년) 등 구조조정기업의 인수합병(M&A) 자문뿐만 아니라 웅진그룹(2012년), 동양시멘트 등 동양 5개 계열사(2013년) 등의 법정관리 자문까지 두루 담당했다. 웅진그룹의 경우 대규모 기업집단의 지주회사가 처음 기업회생을 신청한 사례였다. 동양 계열사 법정관리는 1000명이 넘는 개인채권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업구조조정에는 선제적 자문이 중요"
현재 기업구조조정은 금융권 주도의 워크아웃과 법원 주도의 기업회생 두 갈래로 나뉜다. 통상 금융부채가 많을 경우 워크아웃을, 우발부채 문제까지 해결하고자 한다면 기업회생절차를 밟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금융권과의 거래에는 익숙한 반면, 법원에 가는 것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인들의 경우 "워크아웃에 매달리다 끝내 부결돼 만신창이 상태로 로펌을 찾아와 적절한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치는 일이 다반사"라고 박 변호사는 안타까워했다.
최 변호사는 "(워크아웃에 매달리다) 뒤늦게 찾아온 기업들에 회생의 활력을 불어넣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로펌을 찾아온다고 해서 무조건 법정관리를 권하는 것은 절대 아닌 만큼, 선제적인 법률대응을 통해 어떤 절차가 해당 기업의 구조조정에 더 적합할지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항공업이나 해운업종은 금융권에서 투자를 받기 위해 SPC(특수목적회사)를 설립해 항공기, 선박 등 자산의 소유권을 두어야 한다. 이른바 도산절연 목적인데, 이 때문에 법정관리로 가면 절차가 복잡해진다. 이와 같이 업종 및 케이스별로 검토하고 어떤 법률리스크가 있을지 자문하는 게 로펌의 역할인 것이다.
최 변호사는 "도산절연처럼 구조조정 작업은 1부터 100단계까지 어느 하나라도 놓치면 문제가 더 꼬이기 마련이다"면서 "채무자기업 대리 경험이 풍부할수록 정교한 자문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태평양의 경우 구조조정 과정에 필요한 디지털포렌식의 클라우드서버가 해외가 아닌 국내에 있다는 점도 보안에 예민한 기업 입장에서 안심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태평양 기업구조조정팀 변호사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늘고있는 요즘, 김인섭 대표변호사의 '가치집단론'을 되새기고 있다. 태평양은 이익집단이 아닌 가치집단으로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변호사는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하반기를 지나면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라는 두 갈래의 길 앞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기업들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힘든 기업과 함께 가면서 실적을 개선하고 영업력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