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을 한 지역에서 5년 이상 일하게 하는 ‘법관 장기근무제도’ 시행이 임박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사 때마다 윗선의 눈치를 보는 법관의 관료화를 막고 재판 연속성 및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일각에선 ‘향판(鄕判)제’(지역법관제)의 부활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10일 한국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한 법원 내부문건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최근 법관의 장기근무 대상 후보지 선정을 마치고, 내년 정기인사 이후부터 장기근무제도를 시행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이 문건에 따르면 장기근무 대상 후보 법원은 크게 △5년 근무 △7년 근무 △7~10년 근무 법원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서울권인 서울 남부·북부지법은 5년 장기근무 대상 법원에 속하고, 경인권인 의정부지법·인천지법 등은 7년 장기근무 대상 법원에 포함됐다. 그 외 지방권인 춘천지법·대전지법·청주지법·대구지법 등은 7~10년 근무 대상 후보지로 선정됐다. 특정 법원에 장기근무를 신청한 판사 수가 그 법원의 정원 수 대비 일정 비율 이하로 맞춰지면 희망 법관들은 해당 법원에서 전보 없이 일정 기간 근무하게 된다. 이 비율은 40% 안팎으로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판사들은 정기인사 때가 되면 2~3년 주기로 전국 법원을 돈다. 같은 법원 안에서도 재판부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 판사들의 잦은 인사발령은 재판의 연속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재판이 길어져 소송 당사자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판사들이 인사권을 가진 대법원장의 눈치를 보게 한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됐다.
서울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전국 단위 대규모 법관 인사이동을 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며 “그마저도 일본은 신청을 받기 때문에 우리와 목적 등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권에는 법관도 부족한 데 이전처럼 1000명 단위의 대규모 인사이동은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선 법관과 토착 세력과의 유착 우려도 나온다. 법원행정처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과거에도 판사가 원하면 10년 정도 한 지역에서 근무하는 지역법관제가 있었는데 ‘황제노역 사건’ 이후 2014년 폐지됐다”며 “장기근무제도를 시행한다면 법관의 윤리성 등을 보완할 수 있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제노역 사건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벌금 245억여원을 50일 노역으로 탕감받은 사건이다. 당시 판결을 맡았던 광주고법 부장판사는 대주그룹과 아파트 매매를 한 사실까지 불거져 큰 비난이 일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