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로 숨는 코로나 환자들…또다른 시험대 오른 K방역

입력 2020-05-10 16:43
수정 2020-05-10 16:48

"유흥시설이나 종교시설 등에 대한 우려가 이태원클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발병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돼 굉장히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지역사회 추가 전파차단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감염예방을 위한 책임 있는 실천과 협조가 필요하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10일 정례브리핑에서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서울지역 코로나19 추가 확산을 막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면서다. 동시에 그는 협조를 당부했다.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자칫 음지로 숨어 검사를 받지 않을 것을 우려한 당부다.

이태원 클럽 등 사적인 공간을 통해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사생활 노출을 우려해 확진자들이 음지로 숨을 위험이 높은 것도 부담이다.

용산구에 따르면 지금까지 방역당국이 파악한 이태원 클럽 방문자는 지난달 30일~지난 5일까지 7222명에 이른다. 이들 중 중복인원 1705명을 제외하고 5517명에게 연락을 시도해 64%인 3535명과 연락이 닿았다. 여전히 36%는 연락하지 못했다.

업소마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포함된데다 사생활 공개를 꺼린 방문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태원 등 서울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장소 중 일부는 외국인들과 성소수자들이 자주 찾던 곳이다.

하지만 사생활 공개에 민감한 외국인들은 상대적으로 방역당국의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동선이 공개되면 그동안 주변사람에게 감췄던 성적취향이 공개될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상당수일 것으로 의료계에서는 추정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에 대한 정보가 지나치게 많이 공개되면서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들이 쉽게 나서지 못하는 배경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0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통해 "특정 커뮤니티에 대한 비난은 적어도 방역의 관점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접촉자가 비난을 두려워해 진단검사를 기피하게 되면 그 피해는 우리 사회 전체가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성소수자 등에 대한 비난을 자제해달라는 취지다.

방역당국은 휴대폰 등에서 수집한 위치정보, 주민등록번호, 진료 기록, 출입국 기록, 신용카드 거래 내역, 대중교통 사용 기록, CCTV 영상 등 7가지 개인정보를 활용해 코로나19 환자를 추적한다. 추가 환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를 대중에 공개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사생활이 지나치게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확진자별 동선보다는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와 시간을 중심으로 공개 방식을 바꾸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서울시는 각 구별 취합한 동선은 확진별로 공개하고 있지만 전체 정보는 장소별 지도의 형식으로 공개하고 있다. 전병율 차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인별로 동선을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당일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지나간 장소를 포괄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