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컬리는 유통업계에서 ‘외로운 개척자’였다. 2015년 5월 국내 최초로 신선 먹거리를 새벽배송하는 온라인 장보기 앱을 내놨다. 밤 11시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물건을 갖다 주겠다고 했다. 새벽배송체계가 없어 물류체계를 완전히 새로 짜야 했다. ‘고비용 저효율’ 사업 모델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얼마 못 갈 것”이라는 혹평과 함께 창사 이래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매각설도 끊이지 않았다. 그런 사이 유통 대기업과 유사 경쟁자들이 새벽배송 시장에 뛰어들었다.
마켓컬리 운영사인 컬리는 8일 벤처투자사들로부터 2000억원의 자금을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한 해 매출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고 창사 이래 최대 규모다. 이번 투자를 합쳐 누적 투자 유치 금액은 4200억원에 이른다.
▶본지 4월 4일자 A13면 참조
마켓컬리 관계자는 “이번 투자 유치로 물류 인프라에 날개를 달게 됐다”고 평가했다. 투자금액은 경기 김포의 물류센터 증설, 마케팅 인재 유치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시장의 불안한 시선을 잠재우는 효과는 덤이다.
새벽배송 시장 개척자에 힘 실어
컬리의 투자 유치는 이번이 다섯 번째다. 스타트업이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집하는 단계를 뜻하는 ‘시리즈’는 E단계까지 왔다. 회사 설립자금을 뜻하는 시리즈 A를 제외하고 B~D 단계에서만 2200억원을 수혈했다. 이번엔 전체 누적 투자 금액에 맞먹는 뭉칫돈을 받았다. 매각설은 ‘쑥’ 들어가게 됐다. “언제 회사를 팔 거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당분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이번 투자에는 기존 투자자인 SK네트웍스, 힐하우스캐피털, 세콰이어캐피털차이나가 다시 참여했다. 새 투자자도 들어왔다. 디에스티 글로벌(DST global), 홍콩 투자사 에스펙스(Aspex)다.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벤처 투자 심리가 위축되는 와중에 금고 문을 열었다. 커지는 새벽배송 시장 규모가 그 배경이다. 2015년 100억원 수준이던 시장 규모는 올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1조원을 거뜬히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자들은 가장 먼저 새벽배송 시장을 연 마켓컬리의 ‘개척자 지위’를 인정했다. 존 린드포즈 디에스티 글로벌 아시아 대표파트너는 “마켓컬리는 빠르게 성장하는 온라인 장보기 시장 내에서 고성장을 이어가며 물류에 대한 지속적인 혁신을 보여줬다”며 “한국 소비자들의 장보기 습관 변화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잡고 3년 내 흑자전환”
마켓컬리는 새벽배송 시장을 키우기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해왔다. 적자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지난해 적자는 986억원. 물류센터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시스템을 갖추는 데 자금을 쏟아부었다. 우수 판매자를 잡기 위해 공급사의 제품을 전량 직매입했다. 대금도 빨리 지급했다. 능력 있는 상품기획자(MD)를 끌어모으는 데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컬리는 소비자에게 맞춤상품을 제안하는 ‘큐레이션 기능’을 더 강화하고 있다. 단독 입점한 우수 공급사가 늘면서 마켓컬리에서만 살 수 있는 상품 비율은 전체 제품 중 30%를 넘는다.
마켓컬리는 2000억원의 실탄을 서울, 경기 등 수도권 물류를 효율화하는 데 쓸 방침이다. 올해 말 완공 목표인 김포 물류센터는 올림픽대로 끝에 자리잡는다. 한강변을 따라 손쉽게 서울과 수도권으로 배송 차량이 나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신세계, 롯데도 김포에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두고 있다”며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업계는 마켓컬리의 흑자전환 시기를 주목하고 있다. 마켓컬리 내부적으로는 2~3년 내를 점치기도 한다.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는 “이익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의미가 없다”며 “지금까지 소비자의 습관을 바꾸는 일에 돈을 썼다면 앞으로는 서비스 완성도를 높여 가며 온라인 장보기의 양적·질적 성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