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시는 '보이지 않는 손'…해외 작가와 출판사 '공정한 계약'으로 묶어"

입력 2020-05-08 15:49
수정 2020-05-08 15:56
최근 국내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중 열에 네 권은 번역서다. 독자들은 책의 작가와 번역가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누가 그 많은 책들을 수입해 오는지에 대해선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김희순 에릭양 대표(사진)는 해외에서 책을 가져오는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한다.



“훌륭한 해외 작가를 훌륭한 출판사와 연결시키는 게 제 일입니다. B2B(기업 간 거래)라 일반 독자들에겐 알려질 일이 거의 없죠.” 김 대표는 자신의 업무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이 짧은 답변 안엔 많은 팩트가 숨겨져 있다. 에릭양은 1995년 설립됐다. 해리포터 시리즈, 스티브 잡스 자서전 등 굵직한 베스트셀러들이 에릭양을 거쳐 수입됐다. 90여개국의 5000여개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으며, 누적 계약 책은 5만여 권에 달한다. 2006년엔 중국 지사도 세웠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 수입한 책을 일렬로 세우면 지구 한 바퀴는 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 에이전시 업계는 저자와 직접 함께 일하는 프라이머리 에이전시, 저자를 대표해 해외 각국과 계약을 맺는 서브 에이전시로 구분된다. 한국의 경우 에릭양을 비롯해 대부분의 에이전시 기업들이 서브 에이전시다. 현재는 국내 책이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에 수출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엔 한국 작가들을 대표하는 프라이머리 에이전시 역할을 한다. 김 대표는 “영미권은 작가와 출판 에이전시 간 관계가 매우 중시된다”며 “프라미어리 에이전시가 대부분 작가의 저서 마케팅과 해외 계약 전체를 담당한다”고 전했다. 또 “에이전시 간 계약을 맺을 땐 저자와 출판사 양측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며 “상호 간 커뮤니케이션이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결코 출판 에이전시 업계에서 장기적으로 살아남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독자들의 성향에 대해선 “시기와 트렌드마다 다르게 변하기 때문에 특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각국 독자들의 정서에 대해서 딱 구분지어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며 “다만 지금의 경우 로맨스 소설이나 단순 자기계발서보다는 좀 더 깊이있는 인문·사회 분야가 강세를 보이는 편”이라고 전했다.

해외 저자별 개런티에 대해선 “작가의 책이 한국에서 얼마나 팔렸는지 먼저 살펴본다”며 “해당 책을 출판했던 출판사에 저자의 적정 개런티에 대한 옵션을 준다”고 설명했다. 또 “저자가 콘텐츠의 주인인 만큼 저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며 “밀리언셀러급 히트를 쳤던 경우 여러 출판사에서 계약을 맺자 하기 때문에 그 사이를 잘 조정하는 것 역시 에이전시의 주 업무”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가 출판 에이전시에서 일하기 위해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신뢰였다. 그는 “계약 맺기도 중요하지만 계약 후 저자와 해외 에이전시를 관리하는 일이 훨씬 더 비중이 크다”며 “비록 겉으로 보이진 않지만 이 일이 전체 에이전시 업무의 6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관리 업무를 잘해야 진정한 출판 에이전시라고 생각해요. 우리 직원들에게도 계약 자체에만 신경쓰지 말고 지속성을 중시하라고 말하죠. 그걸 잘해야 나중에 그 저자가 다시 계약하자고 제의할 테니까요.”

김 대표는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도서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왔다. 그렇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지구촌을 덮치면서 영국 런던도서전, 이탈리아 볼로냐 아동도서전 등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업무 지장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는 “요즘엔 해외 에이전시들과 화상회의로 콘텐츠 수출입을 논의한다”며 “시차 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양질의 콘텐츠를 얻어오기 위해선 열심히 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 대표가 최근 눈여겨 보는 분야는 오디오북이다. 그는 “오디오북은 특별한 장비 없이 언제 어디서든 소리로 책을 듣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성장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있다”며 “오디오북 에이전시 업무에도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