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안방에 물린 미래에셋, 7조 블랙홀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입력 2020-05-07 09:04
수정 2020-05-07 15:24
≪이 기사는 05월06일(13:50)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미래에셋그룹이 미국 내 15개 고급호텔·리조트 인수계약을 놓고 중국 안방(安邦)보험과 본격적인 법적 분쟁에 돌입했다. 미래에셋은 안방보험이 지난달 27일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 제기한 계약이행 소송에 맞서 이달초 매매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계약금 6억달러(약 7000억원) 반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래에셋은 작년 9월 안방보험으로부터 58억달러(약 7조원)에 미국내 15개 고급호텔과 리조트 자산을 인수하기로 계약했다. 미래에셋이 당시 싱가포르투자청(GIC)와 캐나다 브룩필드 등을 따돌리고 인수에 성공했을 때만 해도 준수한 거래라는 평가를 받았다. 불과 3년 전 안방보험이 미국 사모펀드(PEF) 블랙스톤으로부터 매입한 미국의 상징적인 자산을 싼 가격에 인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매매 대상 호텔의 등기 명의가 제3자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된 데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우선 미래에셋이 7000억원 규모의 계약금을 얼마나 돌려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악의 경우 소송에서 완전 패소해 울며 겨자먹기로 7조원대 호텔을 떠안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계열 증권사 미래에셋대우의 자금이 조 단위로 묶이면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몰릴 위험이 있다. 게다가 미국 은행들이 대출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사모펀드 등에서 비싼 이율로 대출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점도 부담이다.

쟁점①. 최악의 경우 미래에셋이 호텔을 인수해야할까

안방보험은 2017년 중국 정부로부터 무리한 차입경영과 국부유출 등을 이유로 제재를 받고 경영권을 환수당해 이번 거래대상 호텔 자산을 시장에 내놨다. 안방보험은 현재 디지아보험으로 간판을 바꿔달았지만 호텔 매각 의지는 변함이 없다.

안방보험은 지난달 소장을 통해 "본건 거래를 종결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는 동안 코로나19 사태가 세계를 강타했고 호텔산업도 큰 타격을 받았으나 우리는 모든 의무를 다했다"며 "피고들에게 계약이 (당초 종료 예정일인) 4월 17일 종결된 것과 같이 모든 계약 조건들이 효력을 갖는 형태로 본건 거래를 종결하는 것을 포함해 계약상 그들의 의무들을 특정해 이행하도록 하는 명령을 내려달라"고 델라웨어 법원에 청구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래에셋이 계약금만 낸 상태에서 더 이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계약해지 통보를 했기 때문에 계약 이행을 강제당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난 4일 “안방보험이 계약을 어긴 부분이 드러나 지난달 17일 이를 15일 내에 해소하라고 통지했지만 별다른 소명이 없어 계약서에 명시된 계약 해지권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다만 미래에셋이 실제 호텔을 인수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한 대형로펌 대체투자 담당 변호사는 "국내 부동산 계약 관행과 달리 미국 실물 자산인수 때는 계약서에 명시적으로 계약금을 포기하고 철회할 수 있다는 규정을 넣지 않았다면 이행판결이 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쟁점②. 등기 명의 사기를 이유로 계약금 돌려받을 수 있을까

만약 미래에셋 뜻대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면 다음 쟁점은 계약금 7000억원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여부다. 미래에셋은 안방보험이 먼저 계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안방보험이 호텔 매매계약과 관련해 제3자와 소송 중인 것으로 드러나 안방보험에 관련 자료를 요구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는 일견 미래에셋의 과거 주장과 배치된다. 등기 명의에 관련한 의혹은 지난해부터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제기됐다. 당시 미래에셋은 "안방보험의 호텔에 사기 전과가 있는 한 인물이 임의로 소유권 등기 신청을 했지만, 비교적 간단한 소송으로 등기부 정정이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미래에셋은 "일반인들이 미국 등기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생긴 오해며 문제 없이 호텔을 인수 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 등기소는 신청만 하면 확인 없이 행정적으로 등기 명의를 이전해주며 이는 소유권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설명이다.

미래에셋 측은 이와 별개의 문제가 발견됐다고 주장한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당초 해명은 캘리포니아 자산의 명의 문제에 대한 설명이었을 뿐 말을 바꾼게 아니다"라며 "나중에 발견된 델라웨어의 소송에 얽힌 문제가 치명적이었다"고 강조했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델라웨어 소송건 때문에 거래에 필수적인 권원보험조차 제대로 들 수 없어 자산을 인수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안방보험은 이 문제와 관련해 "델라웨어 소송도 캘리포니아의 사기범과 동일범의 소행이며 누가봐도 사기라는게 분명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이번 케이스는 전형적인 ‘매수인의 후회(buyer’s remorse)’ 사건"이라며 "사기의 내용을 신속하게 밝혀냈고 그 소유권을 확인하는 최종판결을 받았음에도 미래에셋이 그 사기꾼들과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쟁점③. 코로나 사태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중대한 사정변경인가

미래에셋이 계약금을 돌려받기 위해 희망을 걸 수 있는 쟁점으로는 코로나19 사태가 꼽힌다. 업계 안팎에선 미국 현지의 담보대출 시장이 얼어붙은 게 계약 해지에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미래에셋은 최근까지 골드만삭스를 주관사로 선정해 약 4억달러의 현지 대출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골드만삭스와 현지 금융회사들이 "기존 조건으로는 도저히 대출을 해줄 수 없다"고 협상을 거부하면서 관련 분쟁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의 대유행은 이번 계약서엔 명시적으로 포함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미래에셋이 계약금을 돌려받기 위한 전략으로 코로나19가 중대한 사정변경이라고 주장할 여지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미국에선 앞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시장 변동과 관련해 비슷한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번 사건이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소송에서 어느 일방에만 책임을 지우는 판결이 나면 산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안방보험이 애초부터 호텔 영업 상황과 관련한 자료를 과장했다는 주장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주장이 입증되는 경우에도 안방보험의 계약해지 책임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