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개발 중인 알츠하이머 치매 후보물질(파이프라인)의 연구 데이터를 한 번도 못 본 곳은 있어도 한 번만 본 곳은 없습니다.”
주력 후보물질의 경쟁력을 묻는 말에 류진협 바이오오케스트라 대표(36)는 이렇게 말했다.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의 연구 데이터가 워낙 좋아서란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감이 넘쳤다. 이 회사는 차세대 치료제로 꼽히는 리보핵산(RNA)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잇달아 실패한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개발에 도전장을 냈다. 류 대표는 “알츠하이머 치매는 물론 아직 극복하지 못한 난치병을 하나씩 정복해가겠다”고 했다.
○일본 바이오벤처 탐방 후 창업 결심
부산 토박이인 류 대표는 일본 유학파다. 쓰쿠바대와 도쿄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유학을 떠난 것은 단백질의 분해를 연구하고 싶어서였다. 퇴행성 뇌질환 등 단백질 분해와 연관돼 있는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그는 도쿄대에서 의학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병리면역미생물학 분야 세계적 대가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미생물 면역과 단백질 분해 분야 대가인 사사카와 지히로 교수,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 권위자인 다케시 이와츠보 교수가 그의 스승이다.
그가 창업을 결심한 것은 박사과정 2년차였던 2014년 일본 바이오벤처 펩티드림을 방문하면서다. 펩타이드 기반 신약을 개발하던 펩티드림은 도쿄대 연구실에서 출발한 바이오 회사다. 펩타이드 스크리닝 기술이 워낙 뛰어나 파이프라인이 1개뿐인데도 시가총액이 10조원에 달했다.
류 대표는 펩티드림의 기이치 구보타 회장에게서 학위과정을 마치면 합류해달라는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사업화에 관심이 많고 또 그런 꿈을 꾸는 사람들이 펩티드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저도 창업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서 기이치 회장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머지않아 업계에서 (경쟁자로) 만나자고요.”
○각광 받는 RNA 치료제
전공을 살려 뇌질환 신약 개발을 창업 아이템으로 정한 류 대표는 최고의 개발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 1년 넘게 고민했다. 그러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한데 모아 시너지를 내보자는 생각을 했다. 회사 이름도 바이오오케스트라로 정했다. 여러 연주자가 협연하는 오케스트라처럼 여러 분야의 바이오 전문가가 조화를 이루며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라는 의미다. 실제로 이 회사에는 일본 미국 등지에서 생물학, 신경면역, 약물전달체, 바이오인포매틱스 등을 연구해온 바이오 전문가들이 차례로 합류했다.
류 대표는 2016년 10월 회사를 세웠다. 대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인큐베이터센터에 둥지를 틀었다. 최근엔 대덕단지 내에 990㎡(약 300평) 규모의 연구소도 따로 마련했다.
RNA는 DNA가 지닌 정보를 복사해 유전자 발현과 단백질 합성에 관여한다. 따라서 RNA를 활용하면 이론적으로 DNA가 잘못돼 생긴 질병과 단백질이 문제가 돼 생긴 질병을 모두 고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RNA 치료제가 각광받고 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미국 바이오벤처 모더나가 주목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회사는 코로나바이러스의 S단백질을 발현하도록 지시하는 전령 리보핵산(mRNA)의 염기서열 설계부터 임상 진입까지 과정을 불과 3개월 만에 해냈다. 류 대표는 “RNA 플랫폼이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RNA 치료제는 앨나일람의 ‘온파트로’가 최초다. 2018년 허가를 획득한 이 약은 몸속 장기와 조직에 아밀로이드가 축적돼 기능을 잃게 하는 유전성 트랜스티렌틴 아밀로이드증 치료제다. 지금까지 FDA 허가를 받은 RNA 약은 두세 개에 불과하다. 아직은 초기 단계다.
○“RNA 기술로 뇌질환 치료”
바이오오케스트라의 핵심 기술은 두 가지다. 첫째는 다수의 mRNA 발현을 조절하는 RNA 설계 기술이다. 둘째는 혈관을 통해 RNA 후보물질을 뇌세포 안까지 전달하는 기술이다.
이 회사는 치매 등을 일으키는 독성 단백질, 신경염증, 노화를 통제할 수 있는 세포 내 분자 스위치(마이크로RNA)를 찾아냈다. 이를 통해 스위치 역할을 하는 특정 마이크로RNA를 제어하도록 설계한 합성 RNA 후보물질 제조기술을 확보했다.
앨나일람 등 다른 RNA 신약 개발사에 앞선 이 회사의 경쟁력은 약물 전달 기술이다. 정맥주사를 통해 RNA 후보물질을 뇌세포까지 전달할 수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기술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류 대표는 “합성RNA는 효소 등의 방해를 받기 때문에 혈액 속에서 오랜 시간 유지되기 어렵다”며 “앨나일람 다이서나 등 경쟁사들이 국소 투여 주사제로 RNA 치료제를 개발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의 혈뇌장벽 투과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항체 신약의 뇌세포 투과율은 0.1~0.2% 수준이다. 1000개 중 한두 개의 항체 약물만 뇌 1차 방어막인 혈뇌장벽(BBB)을 통과한 뒤 뇌세포 안까지 들어간다는 의미다. 뇌질환 치료제의 약효가 떨어지는 이유다. 류 대표는 “우리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 브레이존세라퓨틱스의 뇌세포 투과율(6%)보다 월등히 높다”며 “알츠하이머 치매, 파킨슨병 등 뇌질환 치료에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알츠하이머 치료 패러다임 바꿀 것”
알츠하이머 치매는 난공불락이다. 바이오젠 제넨텍 일라이릴리 등 다국적 제약사들이 경쟁적으로 항체 기반 치매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알려진 아밀로이드베타, 타우 등의 단백질을 타깃으로 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바이오오케스트라의 차별화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째는 아밀로이드베타, 타우 등 치매 관련 단백질의 병리 현상 차단이다. 이 회사는 뇌신경세포와 면역세포가 제 기능을 하는 것을 방해해 치매를 일으키는 특정 마이크로RNA를 찾아냈다. 이 마이크로RNA와 100% 상보적 서열을 가진 RNA가 이 회사의 주력 파이프라인인 ‘BMD-001’이다. 류 대표는 “단백질 병리현상은 물론 신경염증, 노화까지 통제할 수 있는 일종의 ‘분자 스위치’”라고 했다.
둘째는 뇌세포 속 단백질까지 통제하는 것이다. 뇌세포 속으로 RNA 약물을 전달할 수 있는 기술 덕분이다. 뇌세포 안으로 약물을 보내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세포 외부나 표면에 있는 단백질을 타깃으로 하는 기존 후보물질보다 진일보한 기술이다. 그는 “세포 외부와 표면에 있는 단백질은 전체의 15% 정도밖에 안 된다”며 “세포 내에 있는 85%의 단백질을 통제해야 근본적인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내년 미국에서 임상 1상 돌입
BMD-001의 동물실험 결과는 긍정적이다. 바이오젠의 아듀카뉴맙과 비교 실험에서 짧은 기간에 더 좋은 효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에게 체중 1㎏당 10㎎의 아듀카뉴맙을 24주 동안 매주 한 차례 투약했더니 아밀로이드베타가 50% 감소했다. BMD-001은 1㎎을 2주 동안 주 1회 투약했더니 아밀로이드베타가 50% 줄었다. 게다가 타우병증과 신경염증도 개선됐고 인지능력까지 좋아졌다. 더 적은 용량과 투약 횟수로 더 좋은 효과를 보인 것이다. 타우병증은 타우 단백질이 쌓여 독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츠하이머 치매 원인의 하나다. 류 대표는 “대식세포가 활성화돼 독성 단백질을 잡아먹기 때문에 염증이 줄고 뇌신경 재생 효과도 좋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미국 임상대행업체 찰스리버를 통해 BMD-001의 영장류 독성실험을 진행 중이다. 그는 “이번 전임상에서 뇌에 독성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굉장한 임팩트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올해 전임상이 끝나면 내년 1분기 FDA에 임상 1상 승인신청을 할 계획이다. 내년 2분기께는 임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루게릭병 후보물질 ‘BMD-002’, 파킨슨병 후보물질 ‘BMD-003’, 타우병증 후보물질 ‘BMD-005’는 내년 전임상에 들어간다. 이 가운데 BMD-002는 2022년 임상 1상을 시작할 예정이다.
바이오오케스트라는 전임상을 마친 뒤 파이프라인을 기술 수출할 계획이다. 류 대표는 “글로벌 제약·바이오기업 서너 곳이 최근 기술 검토를 시작했다”며 “뇌 세포 안으로 약물을 전달하는 RNA 기술이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기술 수출은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업공개 시기는 2022년으로 잡고 있다. 주요 파이프라인이 임상에 진입했거나 전임상을 마친 뒤다. 기술 수출 등으로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고 난 뒤 상장하겠다는 전략이다. 류 대표는 “인류가 아직 극복하지 못한 난치병 치료제 개발사로 입지를 넓혀가겠다”고 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