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혜의 패션톡] 아 이토록 쨍한 오렌지색 왁스재킷이라니

입력 2020-05-07 16:46
수정 2020-05-07 16:52
여러 번 왁스를 매겨 짙푸른 색이 도는 레인재킷은 제가 처음 ‘바버’라는 브랜드에 입문하게 만든 옷입니다. 팔꿈치랑 옷깃에는 고풍스러운 골덴 소재를 덧대 “나 좀 클래식해”를 외치는 듯 하죠. 옷에 왁스 칠을 하면 빗방울이 떨어져도 젖지 않아 비가 자주 오는 영국에선 하나쯤 갖고 있어야 할 필수품이라고 합니다. 영국 클래식 왁스재킷의 대명사 바버가 국내에 알려진 것도 알렉사 청 같은 유명 모델이 바버의 비데일 왁스재킷을 자주 입은 모습이 노출되면서부터입니다. 국내에선 가수 이효리 씨가 즐겨 입어서 더 유명해졌죠.


그 바버가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 ‘슈프림’과 손을 잡았습니다. 1020 사이에서, 아니 30대 이상일지라도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 브랜드 슈프림 말입니다. 패션업계에선 ‘짝퉁’이 얼마나 많이 시장에 깔리는지를 척도로 그 브랜드의 성패를 얘기하곤 합니다. 슈프림은 동네 아저씨들이 입을 정도로 ‘짝퉁’이 많이 나올 만큼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죠. 비상장회사로 매출액은 알 수 없지만 2017년 다국적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이 슈프림의 지분 절반을 5억달러(약 6119억원)에 매입한 것만 봐도 대충 규모를 가늠할 순 있습니다. 그 당시 회사 가치가 10억달러(약 1조2300억원)였다면 3년 사이에 브랜드 가치가 껑충 뛰었으니 20억달러 이상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치입니다.


“슈프림이 바버와?”라고 의아해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브랜드 이미지, 역사, 디자인 등 뭐 하나 겹치는 구석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획기적인 콜라보(협업) 상품이 나올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쨍한 오렌지색 왁스재킷이라니, 그동안 어떤 브랜드에서도 이렇게 ‘스트리트 캐주얼’스러운 핫한 디자인과 색상의 왁스재킷을 내놓지 않았던 걸 보면 말입니다. 최근 유행하는 작업복(워크웨어) 스타일의 큼지막한 주머니를 단 것도, 오버사이즈를 적용하되 바버 비데일 왁스재킷 고유의 클래식한 카라 등은 그대로 살린 센스까지.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가 없어보입니다.

슈프림과 바버의 콜라보는 찬반 의견이 확연히 갈린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두 브랜드간 협업이 반갑지만 안 그런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바버는 노땅 브랜드 아니냐”는 1020 세대들의 반응이 나오는 걸 보면 말입니다. 실제로 슈프림의 신상품을 소개하는 각종 사이트와 패션 전문 블로그, 쇼핑몰, 직구몰 등에서는 ‘좋아요’와 ‘싫어요’가 거의 비슷한 숫자로 갈립니다. 저처럼 바버의 클래식함가 왁스재킷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슈프림과의 핫한 만남이 반갑겠지만, 슈프림 팬으로서 바버를 몰랐던 사람 혹은 안 좋아했던 사람에겐 ‘슈프림과 어울리지 않는 브랜드’란 생각이 들 수도 있겠죠.


찬성하든 반대하든 두 브랜드간 협업은 이미 패션업계의 핫 이슈가 됐습니다. 실제로 잘 팔릴지, 슈프림의 다른 콜라보 제품들처럼 리세일(재판매) 가격이 급등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말입니다. 슈프림은 ‘슈테크’(슈프림+재테크)라는 신조어까지 만든 브랜드죠. 과연 바버가 슈테크에 올라탈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