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고, 없애고, 홀렸다"…현대·기아차 '코로나 치명상' 피한 비결

입력 2020-04-30 16:55
수정 2020-05-01 02:00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은 지난 1분기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자동차 판매량이 급감한 탓이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 등 대부분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의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이상 줄었다. 미국 포드는 적자를 냈다.

반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기대 이상의 실적을 보이며 시장 점유율도 끌어올렸다. 현대차의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7% 늘었다. 기아차는 영업이익이 25.2% 감소했지만 지난해 1분기 통상임금 환입이라는 일회성 영업이익 증가라는 변수를 제외하면 30% 넘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대대적인 라인업 교체 △소비자 취향 적극 반영 △인센티브 현실화를 비결로 꼽았다.

세단→SUV 주력 차종 교체

30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차는 최근 라인업을 대폭 교체했다. 소형 세단(현대차 엑센트, 기아차 프라이드)은 과감히 정리했다. 대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늘려갔다. 지난 2년 동안 현대차의 팰리세이드와 코나, 기아차의 셀토스와 텔루라이드, 제네시스의 GV80 등 다양한 SUV가 추가됐다.

전체 판매량에서 SUV 및 준대형~대형 차량이 차지하는 비중도 늘고 있다. 지난 1분기 현대차의 소형~중형 세단 비중은 37.2%로, 작년 1분기(46.2%)와 비교하면 10%포인트가량 줄었다. 대신 준대형 세단 비중은 7.3%에서 11.0%로, SUV 비중은 38.0%에서 42.9%로 늘었다. 기아차의 1분기 소형~중형 세단 비중은 31.7%로, 전년 동기(38.5%) 대비 6.8%포인트 감소했다. 준대형~대형 세단 및 SUV 비중은 57.2%에서 생산차량 3대 중 2대꼴인 64.4%로 증가했다.

라인업 개편은 영업이익 증가로 이어졌다. 소형차보다는 대형차가, 세단보다는 SUV가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난 1분기 주력 차종 교체로 영업이익이 약 3520억원 늘면서 물량 감소로 인한 감소(2260억원)를 상쇄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에 따른 판매 감소를 라인업 개편으로 만회했다는 설명이다. 기아차도 제품 라인업 교체 덕분에 1분기 영업이익이 510억원가량 더 늘었다고 발표했다.


소비자 취향 저격에도 성공

현대차와 기아차가 단순히 새 SUV를 많이 내놓은 것만은 아니다. 현대·기아차 외 다른 글로벌 완성차업체들도 SUV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관건은 시장 반응이다. 현대·기아차가 최근 내놓은 신차들은 소비자 취향을 정확히 ‘저격’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현대차의 대형 SUV 팰리세이드를 받으려면 1년 가까이 기다려야 할 정도로 주문이 밀려 있다. 야외활동을 즐기는 가족이 늘어나 합리적인 가격의 대형 SUV를 원하는 이들이 많다는 시장 수요를 정확히 파악했다는 분석이다. 기아차의 미국 전용 SUV 텔루라이드는 지난해 2월 출시 이후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8만 대 가까이 팔렸다. 세련된 디자인과 넓은 실내 공간, 우수한 주행 성능을 원하는 미국 소비자를 만족시켰다는 게 현지 딜러들 반응이다. 기아차가 내놓은 소형 SUV 셀토스는 인도와 미국, 한국 등에서 인기다. 고급스럽고 실내 공간이 넓은 소형 SUV를 원하는 수요를 충족한 결과다.

미국 등 주요 시장의 인센티브(현금 할인)를 과감하게 줄이는 등 잘못된 거래 관행을 바꾼 것도 수익성 향상으로 이어졌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미국에서 차량 구매자에게 제공하는 인센티브를 지난 2년간 10% 넘게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까지만 해도 재고 처분을 위해 인센티브를 많이 제공했지만, 더 이상 이런 구조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 경영진이 더 이상 인센티브에 기대 차량을 판매하는 관행을 끊자고 결정했고, 그 결과 한동안 미국 판매가 줄어드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며 “신차가 인기를 끌면서 인센티브에 기대지 않고도 판매가 증가하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코로나19를 계기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탄탄한 내수 시장과 높은 공장 가동률을 기반으로 경쟁사를 따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다.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당장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2분기 들어 중단되다시피 한 글로벌 판매망이 얼마나 빨리 복구되느냐가 최대 변수다.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가 글로벌 시장에 안착해야 하는 점도 과제다. 회사 관계자는 “경직된 노사관계와 낮은 생산성이라는 고질적 문제도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