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이야기] 인간 두뇌를 닮을 필요가 없어진 인공지능의 진화

입력 2020-05-04 09:00

오늘날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인간의 뇌 구조를 모방하려 하지 않는다. 9세기 수학자 무함마드 이븐 무사 알콰리즈미의 이름을 딴 ‘알고리즘’은 여러 단계에 걸친 명령어 집합을 의미한다. 하드웨어의 처리 능력과 데이터가 부족하던 시절의 알고리즘은 인간을 그대로 본뜨려 했지만 오늘날 인공지능은 알고리즘이 인간의 뇌 구조에 얼마만큼 가까워야 한다는 목적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그저 해결해야 할 과제를 잘 수행할 수 있는지만을 고민한다.

인공지능 발전의 역사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은 아주 먼 옛날부터 시작됐다. 3000년 전 호메로스는 신이 만든 세 발 달린 의자가 신이 부를 때마다 저절로 굴러왔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상 모든 도구가 스스로 상황을 인지해서 알아서 움직인다면 일의 세계가 어떻게 바뀔지를 고민했다. 본격적인 연구는 1947년 앨런 튜링에 의해 시작됐다. 이후 인공지능 연구는 록펠러 재단의 지원으로 불이 붙는 듯했지만, 1980년대까지 진전이 없어 연구는 활기를 잃었고, ‘인공지능의 겨울’이라 불리는 침체기를 맞이한다.

당시의 인공지능 연구가 진전이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두뇌를 모방하려 했기 때문이다. 두뇌의 실제 구조를 복제해 인공신경망을 만들려 했고, 인간의 추론 과정을 모방하고자 했다. 이들에게는 인간 자체가 복잡한 계산기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인공지능 개발을 위한 노력은 1997년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시스템 ‘딥블루’가 당시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기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딥블루는 엄청난 연산력을 바탕으로 챔피언을 물리쳤다. 흥미로운 점은 딥블루가 가리 카스파로프의 추론, 창의성, 직관을 흉내 내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초당 3억3000수를 계산하는, 인간을 압도하는 연산력으로 체스라는 과제를 수행해냈을 뿐이다. 인간을 닮은 지능을 개발하려는 기존의 노력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었다. 과거의 접근이 추론, 성찰 방식과 같은 인간의 숨은 규칙을 연구자들이 손수 알아내 기계에 주입하는 하향식이었다면, 딥블루부터 시작된 인공지능은 엄청난 연산과 저장능력을 바탕으로 인간의 경험과 사례를 기계 스스로 발굴해 무엇을 할지 파악하는 상향식이었다.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인공지능 개발에 대한 관점이 바뀌자 기술과 업무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경제학자들은 그동안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신기술은 틀에 박힌 업무를 대체한다고 설명했다. 반복적인 업무는 기계의 영역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여전히 트럭 운전이나 문서 작성, 주문 받기, 의료 진단 등은 인간의 영역으로 남은 업무였다. 하지만 인공지능 개발이 상향식으로 바뀌면서 틀에 박히지 않은 업무들도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스웨덴의 햄버거 프랜차이즈 MAX에 들어가면 거의 모든 주문이 종업원을 거치지 않고 키오스크에서 이뤄진다. 오늘날 이런 현상은 맥도날드와 같은 글로벌 프랜차이즈에서도 자주 살펴볼 수 있다. 심지어 아주 경험 많은 소수만 아는 판단도 인공지능이 대신한다. 미국 코넬대 조류연구실에서 개발한 쇠황조롱이라는 뜻의 ‘멀린’이라는 프로그램은 아주 일부의 특성을 바탕으로 어떤 새인지를 알아맞힌다. 스탠퍼드대의 반점 분석 기계는 반점이 찍힌 사진을 바탕으로 피부암 여부를 파악한다. 자율주행기술을 트럭 등의 물류 운송 분야에 도입하려는 논의는 아주 한참 전부터 시작됐다. 경제학자들의 기존 관점이 이런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계가 어떤 명령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입력된 명시적인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전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을 모방할 필요가 없어진 오늘날 기계는 더 이상 인간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연선택이론과 닮은 인공지능 진화

약 150년 전 신학자들은 인간은 신이 자신을 닮도록 빚은 존재로 그 어떤 생명체보다 우월하다고 믿었다. 기계는 가장 우월한 인간을 모방해야 한다는 초기 인공지능 연구자들의 생각도 이와 닮아 있다. 하지만 신학자들의 믿음은 1859년 찰스 다윈에 의해 반박됐다. 인간은 신이 빚은 형상이 아니라 진화의 결과라는 점을 밝혀낸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위한 변이의 과정에서 가장 적합한 형태를 찾아내고 이를 다음 세대로 전달한다는 진화 프로세스를 찾아냈다. 처음부터 완전한 형태가 아니라 그저 내버려두면 생존에 유리한 작은 진화들이 쌓여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인공지능의 진화도 이와 같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리즘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치 자연선택처럼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의식하지 못한 채 우연히 마주치는 복잡성 속에서 진화할 뿐이다.

물론 아직까지 ‘모든 틀에 박히지 않은 업무’를 인공지능이 대체하지는 못한다. 인간을 훌쩍 뛰어넘는 기계가 존재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자연선택이 오늘날의 우월한 인간을 만들어냈듯, 인공지능도 진화를 거듭한다면 인간의 능력을 훌쩍 뛰어넘을지 모를 일이다. 인간은 시간을 이용해 진화했지만, 인공지능은 처리 능력을 이용해 진화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닌 능력이 기계가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의미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인공지능이 더 이상 인간을 닮으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곱씹어볼 때다.

☞ 포인트

오늘날 인공지능(AI)은
인간의 뇌구조 닮기보다는
업무 수행의 적합성에 초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