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들인 신제품, 0.01% 불량 가능성에 전량폐기…"품질은 타협 불가"

입력 2020-04-28 17:48
수정 2020-10-13 18:53
안성호 에이스침대 사장은 2013년 돌연 15년 이상 연구해온 ‘하이브리드 Z 스프링’으로 만든 침대 시제품을 전량 폐기하라고 지시했다. 기계로 100㎏ 이상 무게를 가해 20만~30만 번 두드려보니 스프링이 끊어져 사람을 찌를 가능성이 있다는 실험 결과를 받아든 직후였다. 소비자가 실제 사용할 때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할 확률은 극히 낮았다. 주변의 만류도 있었다. 불량 가능성은 0.01%도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안 사장은 “사람이 쓰는 침대에는 만에 하나의 위험도 없어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이로 인해 신제품 출시가 한 해 미뤄졌다. 새로 도입한 스프링 생산설비까지 철거해야 해 금전적 손실 역시 컸다.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관리’를 향한 그의 고집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안 사장은 가업을 승계한 2세 기업인이다. 1992년 에이스침대 기획이사로 입사했다. 이후 10년 동안 경영수업을 거쳐 창업주 안유수 회장에 이어 2002년 대표로 취임했다. 2세 경영인으로서 부담을 깨고 에이스를 침대업계 1위 자리에 확고하게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까다로운 소비자가 지금의 에이스침대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안 사장은 엄격한 품질관리를 강조한다. 한두 해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개발(R&D)에 시간과 돈을 쏟아붓는 ‘뚝심’의 경영자다.

직접 소재 생산해 품질 높여

“사람이 누워서 사용하는 침대는 더 깨끗하고 제대로 된 자재를 써야 한다”는 게 안 사장의 지론이다. “품질은 타협할 수 없다”는 생각은 생산공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에이스침대는 까다로운 품질관리를 충족하기 위해 매트리스 제조에 필요한 전 공정을 충북 음성에 있는 공장에서 하고 있다. 침대 매트리스 제작에 필요한 스프링을 비롯해 통기성 메모리 폼, 충전 솜, 패딩 등 핵심 소재를 자체 생산한다. 침대에 들어가는 주요 소재를 직접 생산하는 침대 업체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 안 사장은 “우리가 제시하는 밀도와 두께 등의 기준을 맞출 수 있는 외부 업체를 찾기 힘들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우리의 품질관리 기준을 바꾸느니 직접 만드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에이스침대는 매트리스 제작에 필요한 우레탄 폼을 국내 침대업계에서 처음으로 친환경 제품으로 교체했다. 침대 프레임 제작 등에 사용하는 MDF(중밀도섬유판)의 포름알데히드 방출 기준도 환경부 기준인 E1보다 더 엄격한 E0 수준을 충족하는 제품을 국내 업계에서 가장 먼저 썼다.

이 같은 까다로운 품질관리는 소비자의 신뢰로 이어져 실적으로 돌아왔다. 에이스침대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매출은 2774억원으로 13.2% 증가했고, 당기순이익은 423억원으로 47.6% 늘었다. 건설경기 침체와 내수시장 불황으로 가구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거둔 성과였다. 안 사장은 “2018년 4월 라돈 사태가 터진 뒤 안전하고 좋은 침대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며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와 에이스침대의 까다로운 품질관리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독보적인 기술로 제품 차별화

‘침대는 과학’이라는 광고 문구는 에이스침대의 기술력을 상징한다. 안 사장은 침대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침대의 품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인 스프링의 독자 개발에 나선 이유다. 기존 연결형 스프링과 독립형 스프링의 장점을 결합한 제품을 제조하기로 했다. 그렇게 2014년 ‘하이브리드 Z 스프링’이 탄생했다. 시제품을 전량 폐기하는 극약 처방을 통해 얻은 산물이었다. 상단에선 독립형 스프링이 1차 압력을 분산시켜 사용자의 신체 라인에 맞춰주고, 하단에선 연결형 스프링이 2차로 몸무게를 분산시키며 탄력을 유지해 편안함을 제공한다. 기존 침대들의 문제점인 꺼짐, 소음, 빈틈, 흔들림, 쏠림 등을 개선한 제품으로 평가받으며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세계 15개국에서 특허를 획득했다.

세계 침대 업체들이 R&D에 소홀할 때 완전히 새로운 스프링을 만들어냈다. 안 사장은 “침대업계에서 최근 100년 동안 하이브리드 Z 스프링처럼 전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기업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남다른 걸 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는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16년이 걸렸다”고 했다.

여기에는 총 100억원이 넘는 투자금이 들어갔다. 안 사장은 “지금 생각해보면 돈을 쓰기만 하는 미친 짓에 가까웠다. 오너가 아니라 전문경영인이었다면 해고감”이라며 웃었다.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10년 이상 신기술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오너 경영의 장점이 결실을 본 것이다.

대리점 대형화와 상생경영

안 사장은 소비자와의 접점인 대리점을 영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침대는 직접 누워보고 구매해야 한다’는 소신을 바탕으로 매장 대형화를 추진해왔다. 소비자들이 침대를 체험하려면 대형 매장은 필수다. 하지만 도심 내 입지가 좋은 곳의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대리점주들이 외곽으로 밀려났다. 이에 본사가 부지를 사서 건물을 짓거나, 도심 내 기존 건물을 매입해 대리점주에게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에이스 스퀘어’를 도입했다. 현재 전국에 21개의 에이스 스퀘어를 두고 있다. 올해 경기 광주, 부산 덕천, 전북 전주, 전남 목포, 경기 고양 일산 등 다섯 곳을 추가할 예정이다. 이어 2~3년 내 50곳으로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대리점주와의 ‘상생경영’도 안 사장의 주요 경영 화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피해를 본 전국 대리점주에게 임대료, 인건비를 지원하고 나선 배경이다. 지난달 11억원, 이번달에 9억원을 지원했다. 안 사장은 “대리점주가 살아야 회사도 산다”며 “여력이 있는 본사가 최대한 지원할 테니 흔들리지 말고 영업하자고 대리점주에게 호소했다”고 말했다. 대리점들이 꾸준히 영업을 지속하면서 코로나19 여파에도 1분기 실적을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게 업계 평가다.

창사 57주년을 맞은 에이스침대는 100년 기업을 향해 가고 있다. 안 사장은 “2002년 시작한 무차입 경영을 이어가며 재무적으로 탄탄한 회사로 키우겠다”며 “대리점 대형화를 필두로 유통망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개인적인 장기 계획을 묻자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65세에는 은퇴할 생각입니다. 침대도 소비재인데 오너가 너무 나이 들면 시장 트렌드를 좇아가기 힘들어요. 제 아들이나 전문경영인이 100년 기업을 만들 수 있도록 탄탄한 기반을 마련해 놓는 게 제 할 일 아닐까요.”

■ 안성호 에이스침대 사장

△1968년 서울 출생
△1991년 고려대 지질학과 졸업
△1992년 에이스침대 기획이사
△1997년 에이스침대 기획상무, 총괄부사장
△2002년 에이스침대 대표이사 부사장
△2003년~ 에이스침대 대표이사 사장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