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동학개미'라는 표현, 문제 있다

입력 2020-04-28 18:00
수정 2020-04-29 00:47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하다(Perhaps I am stronger than I think).” 시인 토머스 머튼이 남긴 이 명언은 대한민국의 요즘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혼란을 빠르게 수습해나가면서 전 세계가 경탄하는 ‘모범국가’로 떠올랐다. 세계 최고 수준임을 입증한 안정적인 보건의료체계와 의료인들의 헌신, 뛰어난 의술과 장비 제조기술 등은 우리 스스로를 재발견하게 했다.

한 가지 더,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코로나 사태 초기 붕괴 조짐을 보였던 증권시장을 우리나라의 개인투자자들이 힘을 모아 지켜냈다. 한국 증시의 ‘큰손’인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거 투매에 나서면서 1500 밑으로 떨어졌던 코스피지수가 1900선을 빠르게 회복한 데는 개인투자자들의 공이 절대적이다. 3월 한 달 동안 외국인이 12조8528억원어치를 순매도한 반면 개인은 11조4900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증시 개장 이래 최고기록이다. 외국인(매도) 대 개인(매수)의 전쟁터와도 같았던 3월 증시가 결집된 개인의 힘으로 고비를 넘기자 이들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130여 년 전 외세와 맞서 싸운 동학농민들에 빗댄 ‘동학개미’라는 별칭까지 등장했다. 몇몇 전문가가 애칭 삼아 입에 올린 표현이 이제는 각종 증권회사 리포트와 뉴스에서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동학개미’라는 표현, 괜찮은 건가. 증권가 일각에서 처음 회자될 때만 해도 ‘재미 삼아 쓰는 것이겠지’ 하고 지나쳤지만, 그러기엔 꽤나 공공연한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질풍노도의 시대를 보내고 있는 우리 모습을 돌아볼 겸 한 번쯤 화두(話頭)로 삼을 필요가 있겠다 싶다. 먼저 분명히 해둬야 할 게 있다. 동학농민운동은 후세에 남긴 정신적 유산과는 별개로, 외세(일본)에 처참하게 제압당한 봉기였다. 취지가 숭고했다고 해서 좌절로 끝난 사건을 개인투자자들에 비유하는 게 적절한 걸까. 본의가 무엇이건 ‘개인투자 역시 결국은 실패로 귀결될 것’이라는 의미로 읽힐 수도 있다.

서양에서는 비유적 표현을 쓸 때 ‘결과적 실패’로 읽힐 수 있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이런 의미 분별에 무딘 측면이 있다. 덩치가 큰 기업이나 조직을 ‘공룡’ ‘매머드’ 등에 비유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큰 덩치를 견디지 못하고 멸종의 비운을 맞은 동물이어서, 영미권에서는 완전히 몰락한 기업(시어스백화점 등)을 지칭할 때 외에는 거론하지 않는다.

‘동학개미’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를 따져봐야 할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친일(親日)-반일(反日)’ 논란이 우리 사회를 동강내고 있는 와중에 개인들의 주식 투자에까지 ‘항일’의 프레임(frame·틀)을 덧씌워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개인들이 코로나 사태 초반 급락장세에서 대거 주식 매집에 나선 데는 1997년 말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등 과거 사례에서의 깨달음이 작용했다. 외부 충격으로 인해 갑작스레 폭락한 주가는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은 되오른다는 것을 숱하게 경험했고, 초(超)저금리 장기화로 마땅히 돈 불릴 곳을 찾지 못하던 차에 ‘매수 타이밍’을 잡아 주식시장에 몰려든 것이다.

이런 맥락을 모를 리 없는 전문가들이 ‘외국인들의 투매에 맞서 개인투자자들이 의롭게 뭉쳐서 조국의 증권시장을 지켜냈다’는 식의 해석을 입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하더라도 정치적이다. 두 주일 전 막 내린 국회의원 총선거 과정에서 정치논쟁으로 달아올랐던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냉철한 이성의 회복이다. 여야 공방 과정에서 ‘토착왜구’라는 민망한 조어(造語)가 등장해 공격무기로 동원된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반일’의 정치상품화와 국민 분열 해소는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다. 코로나발(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외환 확충 안전장치로 일본과의 통화스와프협정 체결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정치적 분위기에 발목이 잡혀 있는 지금 상황을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희망과 미래지향의 언어로 국민 에너지를 모으는 일이 절실하다. 주식시장을 지켜낸 개인투자자들은 그런 점에서 위대한 이정표를 세웠다. 과거에서 교훈을 찾아내 슬기롭게 행동한 이들에게 굳이 애칭을 붙인다면 ‘스마트개미’ ‘영웅개미’가 낫지 않을까.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