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中 '디지털 위안화' 도입…전 세계 화폐개혁 논의 힘 받는다

입력 2020-04-28 17:56
수정 2020-04-29 00:46
디지털 통화 경쟁 속 한국의 선택은?

다음달 1일부터 중국은 장쑤성 쑤저우, 광둥성 선전, 쓰촨성 청두, 허베이성 슝안 신구 등 4개 지역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시범 운용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당초 일정보다 늦춰지지 않겠느냐는 예상과 달리 상당히 앞당겨지는 셈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빠르게 다가올 디지털 통화 시대에 주도권을 잡으려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야심이 엿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지속돼온 미·중 간 ‘무역 전쟁’, 이달 들어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미국 간 ‘원유 전쟁’에 이어 중·미 간 ‘디지털 기축통화 전쟁’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위안화는 종전의 가상화폐(암호화폐)와 페이스북이 계획하고 있는 ‘리브라’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차원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게 평가돼 왔다. 실물 화폐와 달리 자체적으로 가치가 없는 화폐가 교환 수단, 가치 저장, 회계 단위 같은 3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발행 기관과 법정화 여부가 중요하다. 디지털 위안화는 인민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로서 앞의 두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현재 통용되는 위안화와 디지털 위안화를 1 대 1로 교환해 구권을 신권으로 교체할 때 단행하는 ‘리디노미네이션(화폐거래 단위 축소)’에 대한 우려도 불식시켰다. 인민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위안화를 시중은행을 통해 현재 위안화를 예치한 만큼 금융 소비자(고객)의 전자수첩에 넣어줘 사용토록 하는 국가결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은행이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4개 시범 지역에 도입되는 디지털 위안화는 의외로 빨리 정착될 수 있다. 통제력이 강한 중국으로서는 디지털 위안화를 정착시키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나라 밖으로도 세계 1위 수출 대국으로 부상한 점을 감안하면 경상거래부터 디지털 위안화 결제 비중이 의외로 빨리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직전까지 디지털 위안화를 완전히 정착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각국 중앙은행도 디지털 통화를 도입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스웨덴은 지난 2월부터 ‘e-크로나’를 도입했다. 지난 2개월간 시범 운용한 결과가 기대보다 훨씬 좋아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을 확정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모든 중앙은행의 80%가 도입을 전제로 디지털 통화를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中, 5월부터 4개 지구서 시범 운용

아마존, 구글 등 민간이 국가의 발권력까지 넘보는 것을 견제할 목적으로 페이스북의 리브라 발행을 불허한 트럼프 정부의 방침에 따라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던 미국 중앙은행(Fed)도 ‘디지털 달러’ 도입을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Fed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최종 대부자 역할을 포기하고 ‘무제한 달러화 공급’이라는 1913년 출범 이후 가보지 않는 길을 걷고 있다.

문제는 달러화가 많이 풀릴 경우 우려되는 부작용인 ‘트리핀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트리핀 딜레마란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처음 주장한 것으로,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 등을 통해 달러화를 계속 공급해야 하는데 이 상황이 지속되면 대외 신뢰도가 떨어져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美, 금본위제 부활은 실행 어려워

Fed의 양적완화로 달러 가치를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면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글로벌 시뇨리지(화폐 발행 차익)’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반면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는 브레턴우즈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담했던 과다 달러화 보유 구속, 즉 ‘달러 함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특히 중국이 그렇다.

Fed가 달러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은 풀린 달러화를 환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2015년 12월 금리인상 이후 진행된 출구전략 추진 과정에서 입증됐듯이 이를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화폐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크게 두 가지 방안이 있다.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호하는 ‘금본위제 부활’이다. Fed의 달러화 공급 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금값이 오르는 것도 이 요인이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금 공급량이 제한돼 있고 금 보유국에 또 다른 특혜가 집중된다는 점에서 이를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다. 다른 하나는 디지털 위안화 발행을 계기로 ‘디지털 달러화’ 도입을 앞당기는 것이다. Fed는 디지털 통화 시대에 대비해 오래전부터 대책반을 구성해 준비해 왔다. 현재 통용되는 달러화와 별도로 ‘디지털 달러화’를 언제든지 발행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와 있다는 평가다. 페이스북의 리브라를 디지털 달러화로 격상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적 입장을 감안하면 직접 도입하는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위안화가 조기 정착하면 ‘디지털 달러화’와 또 다른 형태의 기축통화 전쟁이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편입,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등을 통한 위안화 국제화를 꾸준히 추진해 왔다. 디지털 국제통화 질서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구축하면 중국은 글로벌 화폐 발행 차익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국 금융사의 자금 조달 효율성과 편리성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화가 급진전되기 시작한 1990년 이후 미국은 글로벌 화폐 발행 차익으로 연간 23억∼118억달러, 전체 조세 수입의 0.4∼1.8%에 달하는 혜택을 누려 온 것으로 추정된다.

디지털 통화 시대가 전개될 경우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어떻게 펼칠 것인가’ 하는 또 다른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네트워킹 효과와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디지털 통화 시대에 각국 중앙은행은 전통적 목표인 ‘물가 안정’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아마존 효과’ 등으로 물가가 크게 올라갈 가능성이 적고 기준금리 변경, 유동성 조절 같은 종전의 통화정책 수단도 무력화되고 있어서다.

통화와 관련된 정보를 다른 경제주체도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정보의 비대칭성’을 전제로 한 중앙은행의 시장 주도 기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과 시장 참여자 간 관계가 ‘동반자적’으로 변한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위상, 금융시장 효율성 지표인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간 체계는 약화되는 게 불가피하다.

韓, 중앙은행 역할 재정립 필요

가장 우려되는 것은 환경이 급변하면서 ‘새로움과 복잡성’에 따른 위험이 증대되는 것이며, 화폐개혁 논의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사 금융 행위도 극성을 부릴 수 있다. 이런 환경에 맞춰 금융 감독이 종합적으로 이뤄지지 못할 경우 각국 국민의 화폐 생활에 혼란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도 화폐 개혁 논쟁은 국민의 저항이 높은 ‘리디노미네이션’보다 ‘디지털 원화’를 도입하는 쪽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국은행도 ‘디지털 원화’ 발행 논의를 시작으로 △중앙은행 목표 수정 △디지털 통화지표 개발 △통화 유통 속도와 통화 승수 무력화 방지 △통화정책 관할 범위 확대 △통화정책 전달 경로 유효성 점검 △경기 예측력 제고 등의 과제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