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兆 항공사 구제금융 나선 유럽…"국적항공사 살려야"

입력 2020-04-28 08:03
수정 2020-05-28 00:31

유럽 각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항공사를 지원하기 위해 30조원이 넘는 구제금융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급감으로 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이 무너지면 최대 670만개에 달하는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2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유럽 양대 항공사인 루프트한자와 에어프랑스는 유럽 6개국 정부로부터 210억유로(약 28조원)에 이르는 긴급자금을 지원받기로 잠정 합의했다. 두 항공사는 각국 정부와 지원조건을 협상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두 항공사에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배당 중단 △임원 보너스 지급 중단 △직원 월급 삭감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유럽 최대 항공사이자 독일 국적항공사인 루프트한자는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 4개 국가에서 100억 유로(13조3000억원) 규모의 자금지원을 받을 전망이다. 루프트한자는 독일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국적의 오스트리아항공, 벨기에 국적 브뤼셀항공, 스위스 국적 스위스항공을 소유하고 있다.

카르스텐 슈포어 루프트한자 최고경영자(CEO)는 독일 일간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회사는 지금 시간당 100만유로(13억원)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보유한 40억유로(5조3000억원)의 현금으로는 오래 버틸 수가 없다”며 “정부의 자금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루프트한자는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1분기 12억유로(1조6000억원)의 손실을 냈다.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 각국의 봉쇄조치가 지난달부터 본격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2분기 손실은 더욱 불어날 전망이다.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장관은 이날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세계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적항공사 등 자국 기업들은 위기 이후에도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등 4개국 정부는 국책은행 대출 등을 통해 공적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루프트한자는 정부의 자금지원과는 별개로 기존에 보유한 763기의 항공기 중 100기를 팔고, 직원 13만명 가운데 1만 명을 해고할 계획이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정부는 에어프랑스-KLM그룹에 110억유로(14조6400억원)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했다. 에어프랑스-KLM그룹은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국적항공사인 에어프랑스와 KLM이 2004년 합병하면서 출범한 항공그룹이다. 프랑스 정부가 에어프랑스에 70억유로, 네덜란드 정부가 KLM에 최대 40억유로를 지원하기로 했다. 에어프랑스는 지난 26일 성명에서 “정부에서 직접 재정지원으로 30억유로, 국책은행으로부터 40억유로의 금융 지원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브뤼노 르 마이어 프랑스 재무장관은 “에어프랑스가 보유한 35만개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한 지원대책”이라며 “대가가 따르는 자금지원으로 그냥 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에어프랑스의 국유화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독일과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유럽 정부들도 국적 항공사에 대한 자금지원을 서두르고 있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정부는 3개국 연합 항공사인 스칸디나비아항공(SAS)의 지급보증을 위해 30억스웨덴크로나(3700억원)를 투입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국적항공사인 알리탈리아에 5억유로(6700억원)를 지원하는 동시에 완전 국유화에 나서기로 했다. 알리탈리아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정부 소유의 에티하드항공이 지분의 49%를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51%의 지분은 이탈리아 정부 소유다. 라트비아 정부도 국영항공사인 에어발틱에 1억5000만유로(2000억원)의 긴급자금을 지원했다.

영국 최대 국적항공사인 영국항공(BA)도 조만간 영국 및 스페인 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청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영국항공의 모회사인 IAG는 영국항공 외에도 아일랜드의 에어링구스, 스페인의 이베리아항공과 부엘링항공 등을 보유하고 있다. 윌리 월시 IAG CEO는 “영국항공을 비롯한 우리 회사는 보유한 현금을 토대로 아직까지 코로나19 위기에 버틸 여력이 있다”고 밝혔다. 앞서 영국항공은 이달 초 전체 근로자의 80%에 달하는 3만2000명을 대상으로 유급휴직을 도입했다. 다만 영국 가디언 등 현지 언론은 IAG가 영국 정부와 구제금융 협상을 물밑에서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 저가항공사에 대한 자금지원도 잇따르고 있다. 독일 정부는 27일 콘도르항공에 대한 5억5000만유로(7300억원)의 대출 지원계획을 확정했다. 프랑크푸르트를 허브로 운영하는 콘도르항공의 모기업은 영국 여행회사 토머스 쿡 그룹이다. 1841년 설립된 세계 최초·최고(最古) 여행사 영국 토머스 쿡 그룹이 지난해 9월 파산한 이후 콘도르는 심각한 자금난을 겪어 왔다.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장관은 “콘도르는 수익성이 높고 향후 전망이 밝다”며 “이번 대출을 통해 5000명에 달하는 콘도르 임직원들의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영국 정부는 자국에 기반을 둔 저가항공사인 이지젯에 6억파운드(9200억원) 대출을 허가했다. 이지젯은 아일랜드에 기반을 둔 라이언에어와 함께 유럽의 대표적인 저가항공사로 손꼽힌다. ‘괴짜’ 억만장자인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도 영국 정부에 버진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버진아틀란틱 항공사에 5억파운드(7700억원)의 긴급 자금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최근 유럽 항공사들의 올해 잠재적 매출 손실이 890억달러(109조1100억원)에 이를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놨다. IATA는 코로나19 여파로 유럽 항공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종사하는 67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런던=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