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27일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89)이 5·18 당시 계엄군의 시민군을 향한 헬기 사격을 전면 부인했다. 전씨는 이날 재판(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 심리)에서 판사의 ‘공소사실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당시에 헬기에서 사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만약에 헬기에서 사격했다면 많은 사람이 희생됐을 것”이라며 “그런 무모한 헬기 사격을 대한민국의 아들인 헬기 사격수 중위나 대위가 하지 않았을 것으로 나는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각 보조장치를 착용하고 재판에 참석한 전씨는 ‘잘 들리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고, 부인 이순자 씨의 도움을 받아 생년월일과 직업, 거주지 등을 답변했다. 검사의 공소 질문에 답한 뒤엔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며 꾸벅꾸벅 조는 모습도 보였다.
앞서 낮 12시19분께 광주지법에 도착한 전씨는 ‘왜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를) 책임지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건물로 곧장 들어갔다.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씨는 인정신문을 위해 지난해 한 차례 재판에 출석한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으나 재판장이 바뀌면서 13개월 만에 다시 나오게 됐다.
재판을 마치고 나온 전씨는 경찰의 호위 속에 검은색 승합차를 타고 법원을 떠났다. 밖에서 길목을 지키던 5·18단체 관계자가 차량에 계란을 던지기도 했다.
광주=임동률 기자 exi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