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패밀리카’ 또는 ‘아빠차’ 등으로 불렸다. 세단보다 높은 차고와 넉넉한 트렁크는 가족의 주말여행과 야외 레저 활동에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1~2인 가구가 타기엔 부담스러운 크기와 3000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은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었다. 자동차업체들이 소형 SUV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다. 2013년 한국GM 쉐보레 트랙스를 시작으로 르노삼성 QM3(2014년), 쌍용자동차 티볼리(2015년)가 잇달아 출시되면서 소형 SUV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소형 SUV 시장을 지켜보던 업계의 ‘맏형’인 현대·기아자동차도 2017년 코나(현대차)와 스토닉(기아차)을 선보이면서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나홀로 커지는 소형 SUV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승용차 판매량은 129만4000대로 전년보다 0.3% 줄어들었다. 반면 배기량 1600㏄ 이하 소형 SUV 판매량은 22만5000대로 2018년과 비교해 33.0% 증가했다. 전년보다 판매가 6.6% 늘어난 배기량 2000㏄ 이하 중형차와 함께 시장 규모가 커졌다.
소형 SUV 돌풍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현대·기아차와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 등 완성차 5사는 내수 시장에서 2만7369대의 소형 SUV를 판매했다. 전체 판매량(15만1025대)의 18.1%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소형 SUV 판매 비중이 20%에 육박한 건 처음이다. 지난해 평균(11.7%)과 비교하면 6.4%포인트나 비중이 커졌다.
소형 SUV 시장 1위는 기아차 셀토스다. 셀토스는 지난해 7월 출시 이후 지난달까지 4만4000여 대가 팔렸다. 동급 최대 주행 성능과 첨단 안전 사양이 인기 비결로 꼽힌다. 주력인 1.6L 가솔린 터보 엔진은 최고 출력이 177마력에 달한다. 웬만한 중형 SUV를 앞선다. 전방충돌방지보조 장치와 차로유지·차로이탈방지 보조 시스템 등 안전 사양을 모든 모델에 기본 적용했다. 앞차와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거나 설정한 속도로 항속 주행할 수 있도록 하는 스마트 크루즈컨트롤과 같은 첨단 기능을 하위 모델에서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소비자로부터 호응을 받고 있다.
신차 대전 승자는 누구
한국GM과 르노삼성은 신차를 앞세워 셀토스의 독주에 도전장을 냈다. 지난 1월 출시된 트레일블레이저는 개발부터 생산까지 전부 한국GM이 담당한 GM의 글로벌 소형 SUV다. 트레일블레이저(전장 4425㎜, 전폭 1810㎜, 전고 1660㎜)는 셀토스(전장 4375㎜, 전폭 1800㎜, 전고 1615㎜)보다 조금 더 크다. 역동적인 디자인을 앞세워 20~30대 ‘생애 첫 차’ 소비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1.2L 가솔린 터보(139마력)와 1.35L 가솔린 터보(156마력) 등 엔진 다운사이징 덕분에 연비(L당 13㎞대)는 물론 세금 부담도 작은 편이다.
르노삼성 XM3는 국내 SUV 중 첫 쿠페형(차체 뒤로 갈수록 천장이 내려오는 형태) SUV다. 메르세데스벤츠 GLC 쿠페나 BMW X4가 떠오른다. 실내공간을 결정짓는 휠베이스(앞뒤 바퀴 간 거리)가 2720㎜로 경쟁 모델보다 100㎜ 안팎 더 길다. 센터패시아의 9.3인치 세로형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는 미국의 고급 전기차 테슬라를 연상시킨다. 지난 3월 출시 이후 한 달 만에 2만 대가 넘는 계약 건수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르노와 다임러가 공동 개발한 고성능 TCe 260엔진(152마력)의 주행 성능도 탄탄하다는 평가다. 쌍용차도 커넥티드카 서비스 ‘인포콘’을 새로 적용한 리스펙 티볼리를 내놨다.
수입차들도 소형 SUV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프랑스 자동차 브랜드 시트로엥의 뉴 C3 에어크로스는 넉넉한 실내 공간과 높은 연비(L당 14.1㎞)를 앞세워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 미국 지프 레니게이드도 박스형 디자인과 L당 15㎞급 연비로 수입 소형 SUV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