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어려운 때일수록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정부 부처 수장 등 국력을 한군데로 모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국력을 낭비하는 일이다. 한국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국난이 닥칠 때마다 국력을 소모하게 하는 세 가지 고질적인 논쟁이 있다. 국가채무, 외환위기, 화폐개혁 논쟁이다.
이들 3대 논쟁 중 재난지원금(코로나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주는 문제를 놓고 ‘국가채무 논쟁’이 가장 뜨겁다. 현 정부 들어 재정지출이 가뜩이나 많은 상황에서 국민 모두에게 코로나지원금을 지급하면 국가 부도의 위험이 커지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한국뿐만 아니라 대부분 국가에서 이런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국가채무 논쟁을 이해하려면 몇 가지 기본사항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전제돼야 할 것은 ‘재정수지도 민간처럼 흑자를 내야 건전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민간에서는 먼저 들어올 수입을 감안해 나중에 지출하는 ‘양입제출(量入制出)의 원칙’이 적용된다. 이 원칙에서는 흑자를 내는 게 건전하다.
하지만 재정은 쓸 곳을 먼저 확정하고 나중에 거둬들이는 ‘양출제입(量出制入)의 원칙’을 취한다. 이 원칙에서 흑자를 내는 것은 국민에게 세금을 지나치게 많이 걷거나, 거둬들인 세금을 국민 환원의 원칙에 따라 제대로 되돌려주지 않는 경우다.
적자국채 발행은 현 세대가 후손에게 빚을 진다는 의미다.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적자국채로 조달한 재원으로 경기를 부양해 상환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이 조건이 의심을 받으면 발행한 적자국채가 소화되지 않으면서 국가 부도로 직결된다.
특정 국가의 부도 가능성은 국민소득 대비 국가채무 비율로 판정한다. 신흥국보다 대외신용이 높은 선진국은 100%, 신흥국은 70%를 넘지 않으면 재정이 건전한 국가로 분류된다. 최근 들어서는 선진국이나 신흥국에 속했다고 하더라도 국가별로 차별화가 심해 판정 기준을 좀 더 세분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
국가채무는 소속기관과 부채의 성격에 따라 세 가지 개념으로 나뉜다. 협의의 개념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갖고 있는 현시적 채무다. 광의의 개념은 협의의 개념에 공기업이 갖고 있는 현시적 채무가 더해진다. 최광의(最廣義) 개념은 광의의 개념에 준정부기관 채무까지 포함되고, 모든 기관의 현시적 채무뿐만 아니라 묵시적 채무까지 들어간다.
세 가지 개념대로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을 따져보면 협의의 개념으로는 44.8%, 광의의 개념은 73%, 최광의 개념으로는 145% 안팎으로 추정된다. 선진국과 달리 한국이 세 가지 개념별로 국가채무 비율이 크게 차이 나는 것은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이 지나치게 많고, 국가채무 관리가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의미다.
한국이 속한 신흥국의 위험 수준이 70%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은 협의의 개념을 적용하면 ‘재정 건전국’, 광의의 개념으로는 ‘위험 경고국’, 최광의 개념으로는 ‘국가부도 우려국’으로 분류된다. 한국의 대외 위상이 선진국과 신흥국의 중간에 놓여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신흥국처럼 ‘국가채무 위험수준 70% 룰’을 적용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도 있다.
국제적으로 재정 건전성 분류 기준은 ‘협의의 개념’으로 삼는다. 우리 내부적으로 국가채무 논쟁이 붙을 때마다 ‘한국의 재정이 건전하다’는 국제 평가와 함께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정이 건전하다면 현대통화론자(MMT)의 주장처럼 빚을 내 더 써야 하느냐가 마지막 의문점으로 남는다. 국가채무는 평상시에는 협의의 개념이 적용되다가 위기 상황에서는 최광의 개념이 부각될 때가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세 가지 개념별로 국가채무 비율이 차이 나는 문제가 개선될 수 있도록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정비가 필요하다.
외환위기 가능성에 대한 논쟁은 국력 소모에 불과하다. 한국이 직접 보유한 제1선 외화와 통화스와프 형태로 갖고 있는 제2선 외화를 감안하면 외환보유액이 적정 수준보다 1000억달러 이상 많기 때문이다. 화폐개혁 논쟁은 국민의 저항이 큰 ‘리디노미네이션’보다 다음달 선보이는 디지털 위안화에 맞춰 디지털 원화를 도입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