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조 슈퍼예산으로 복지 '펑펑'…정작 코로나 대응에 쓸 돈 모자라

입력 2020-04-26 17:47
수정 2020-04-27 09:31
“지금처럼 국가 예산을 펑펑 쓰면 안 된다. 미래 세대 부담을 생각하고 비상시를 대비해서라도 재정 여력을 비축해놔야 한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8년 11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출범한 문재인 정부 ‘2기 경제팀’에 당부했던 말이다. 윤 전 장관뿐 아니라 대다수 경제 전문가가 같은 취지의 ‘잔소리’를 현 정부 임기 내내 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매년 초확장 예산 편성을 반복했다.

전문가들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민간 경제가 무너지면서 대규모 재정 지출이 불가피해졌다. 이로 인해 늘어나는 국가채무가 43조9000억원이다. 하지만 앞서 복지예산 확대 등 본예산에서 이미 76조4000억원의 국가채무 증가가 확정됐다. 이에 따라 올해 말 국가채무는 849조1000억원으로, 작년보다 120조원 넘게 증가할 전망이다. 증가 규모로 봤을 때 이전 최고 기록인 2009년(50조6000억원)의 2.4배에 달한다.


512조원 슈퍼예산이 문제의 근원

한국의 재정건전성은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축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2016~2018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5.9~36.0%로, 재정건전성의 척도로 꼽히는 유럽연합(EU)의 재정 준칙(60% 이내)보다 크게 낮았다. 정부는 이를 믿고 전례 없는 재정 확장 정책을 폈다. 그 결과 작년 국가채무비율은 38.1%로 높아졌다.

2020년 본예산 편성을 앞두고는 “이제는 재정 확대를 자제해야 할 때”란 지적이 많았다. 작년과 올해 경제성장률이 낮아질 것이란 전망에서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올해 예산을 사상 첫 500조원을 넘긴 슈퍼예산(512조3000억원)으로 짰다. 특히 아동수당·기초연금·고용장려금 등 ‘선심성’ 복지 지출을 대거 늘렸다. 작년 예산 증가액(42조7000억원)의 45.7%에 이르는 19조5000억원이 복지 분야 예산 증액이었다. 이런 여파로 본예산으로만 국가채무가 76조4000억원 늘었다.

“지출 구조조정 적극 추진해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소비·투자·무역 등 경제활동 자체가 멈춰 서서 대규모 재정 투입 외에는 위기를 견뎌낼 방도가 없어졌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대다수 나라가 이렇게 하고 있다. 정부는 1·2·3차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56조원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을 국채 발행으로 조달할 수밖에 없어 국가채무는 43조9000억원 늘게 됐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일부 대책은 피해 극복 취지와 거리가 먼 선심성 지원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득에 상관없이 만 7세 미만 아동에게 1인당 40만원의 소비쿠폰을 지급한 사업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피해 지원이라면서 연봉이 수억원에 달하고 소득 변동도 거의 없는 고소득자에게까지 나랏돈을 퍼주는 게 맞냐는 지적이 나왔다. 코로나지원금도 ‘소득 하위 70% 지급’에서 100%로 확대됐다. 고소득 가구라 하더라도 아이가 3명 있다면 아이돌봄쿠폰(120만원)과 코로나지원금(100만원)까지 220만원을 지원받게 된 셈이다.

문제는 그만큼 재정건전성이 악화된다는 점이다. 3차 추경까지 반영한 올해 국가채무는 849조1000억원으로 관측되고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한국 경상성장률 전망치(-0.9%)를 대입해 계산한 국가채무비율은 44.8%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은 필요하지만 재정건전성 유지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2020년도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 분석’ 보고서에서 “올해 예산 가운데 코로나19로 수요가 줄어든 분야는 감액할 여지가 있다”며 “6914억원에 이르는 여비 예산, 공적개발원조(ODA)와 국제행사 관련 예산을 조정해 재정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