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대한항공 급한 불 껐다…하반기엔 '40兆 기금'서 지원"

입력 2020-04-24 18:02
수정 2020-10-15 16:48

돈줄이 말라가고 있는 대한항공이 24일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서 1조2000억원을 수혈받기로 확정되면서 최악의 ‘돈 가뭄’은 일단 피할 수 있게 됐다. 산은과 수은은 이번 지원으로 대한항공이 최소한 상반기는 유동성 문제 없이 넘길 여력이 생겼다고 보고 있다. 하반기에는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 등이 본격 가동되는 만큼 추가 자금을 공급받는 데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대한항공은 이날 “정부가 적시에 긴급 유동 지원 방안을 마련해줘 감사하다”고 밝혔다.

한숨 돌린 대한항공

산은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올해 3조8000억원 규모의 자금 부족이 예상된다. 대한항공은 정부 지원이 없다면 다음달 중순께 현금이 바닥난다. 산은과 수은은 그 전에 자금을 집행할 계획이다. 최대현 산은 부행장은 “상반기에 1조2000억원의 지원이 이뤄지면 대한항공은 2000억원 이상의 자금 여유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에 대한 ‘1조2000억원 지원’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운영자금으로 2000억원을 지급하고, 화물운송 관련 자산유동화증권(ABS) 7000억원어치를 인수한다. 오는 6월에는 대한항공의 영구채 3000억원어치도 사들인다. 산은 측은 “6월 말 만기가 돌아오는 2100억원어치의 채권을 차환 발행할 수 있게 되면 시장에 여러 긍정적 신호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두 국책은행이 인수할 영구채에는 주식 전환권이 붙어 있는데, 만약 산은·수은이 이를 행사하면 대한항공 지분 10.8%를 보유하게 된다. 이에 대해 최 부행장은 “국책은행이 안정적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국내 2금융권, 해외 리스사 등 시장참여자들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회사채 신속인수제’ 참여도 산은과 논의하고 있다. 하반기에 돌아오는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이 제도를 활용해 차환 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항공은 이날 입장문에서 “직원 고용 유지를 최우선으로 하고 자산 매각, 자본 확충, 사업 재편 등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지주사인 한진칼에 대한 3자 연합과의 소모적인 지분 경쟁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아시아나항공에는 1조7000억원이 한도대출 방식으로 지원된다. 돈이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이다. 최 부행장은 “이번 지원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예정자인 HDC현대산업개발이 인수합병(M&A) 절차를 정상적으로 종결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發 LCC 구조조정 신호탄

산은은 이날 지난 2월 발표한 3000억원 외에 저비용항공사(LCC)에 대한 추가 지원은 현재로선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항공업계에선 정부발(發) LCC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추가적인 자구노력을 요구하는 것도 LCC 9곳 중 일부를 정리하겠다는 의도로 항공업계는 분석한다. 대한항공 등 대형 항공사와 달리 LCC는 매각할 자산이 거의 없다.

한 LCC 관계자는 “이미 모든 LCC가 임직원 임금 반납, 유·무급 휴직을 시행하고 있다”며 “갖고 있는 자산이 비행기밖에 없는데 여기서 더 자구책을 요구하는 건 사업을 접으라는 의미와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자구노력 요구에 따라 지금까지 지원 규모의 절반에 못 미치는 1260억원이 집행됐다.

플라이강원, 에어로케이, 에어프레미아 등 신생 LCC들은 지원 대상도 아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플라이강원이 자구책으로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신생 LCC들이 출범과 함께 첫 해를 넘기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에어부산이 우선 매물로 나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에어부산의 지분 44.17%를 보유하고 있는데,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게 되면 공정거래법에 따라 손자회사 에어부산의 지분 100%를 2년 안에 확보해야 한다. 1조원이 넘는 지원을 받는 아시아나항공은 주식시장에서 에어부산 지분을 모두 사들일 여력이 없다. 에어부산 주가가 경영 악화로 곤두박질했지만, 이날 시가총액은 여전히 2000억원이 넘는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산은도 모든 항공사를 지원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발 항공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임현우/이선아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