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서울 세종대로 삼성생명 빌딩에 대형 흑백사진이 걸렸다. 쿠바 출신인 세계적 사진작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무제’라는 작품이었다. 언뜻 봐서는 누군가의 평범한 침대를 찍은 사진이다. 두 사람이 함께 누웠던 흔적이 남은 빈 침대 머리맡에는 베개 두 개가 놓여 있다. 에이즈로 죽어가는 연인과의 사적 공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관계의 절실함과 두려움을 표현했다.
뛰어난 현대미술 작품은 이처럼 평범한 생각을 바꾸는 일, 즉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된다. 미술사학자인 전영백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는 현대미술가들이 어떻게 발상을 전환해 희대의 명작을 탄생시켰는지를 탐구했다. 전 교수는 《발상의 전환》에서 현대미술가 32명의 작품을 살펴보며 그 안에 깃든 발상의 전환이 우리 삶에 제시한 의미가 무엇인지 풀어낸다.
책은 현대미술가들의 작업을 개인, 미학, 문화, 도시, 사회·공공 등 다섯 범주로 나눠 작가들이 보여준 방식의 성공 사례를 다룬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태블릿PC인 아이패드를 이용해 드로잉하는 신체적 경험과 그렇게 체득한 감각을 통해 작품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 저자는 “아이패드 드로잉을 위한 기술 습득에 인내와 노력을 쏟은 덕에 이제 우리는 테크놀로지가 무엇이든 호크니 자체를 느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한다. 살아 있는 상어를 포름알데히드(방부액)에 넣어 유리관에 담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누군가의 살아 있는 마음속, 신체적 죽음의 불가능성’은 아름다움을 예술적 가치로 여기던 미학 영역에 ‘충격’도 가치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발상을 보여줬다.
저자는 일상의 습관과 오랜 관습을 색다른 각도와 방식으로 표현한 개념미술이 현대미술의 대부분이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그는 “상당수 현대미술가는 관람자들이 어떤 미술 오브제(대상)를 단순히 보여주는 게 아니라 체감하게 하는 식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보편적 감정을 유발한다”며 “이를 통해 일상의 삶과 분리돼 보이던 사적 공간과 공공건물, 빛바랜 역사 현장들이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열림원, 320쪽, 1만6000원)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