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 유럽에서는 육류 섭취가 금기시됐다. 당시 성직자들은 사람이 돼지고기 등을 먹으면 마음에 성욕이 일고 죄를 짓게 된다고 설파했다. 자연스레 유럽에서는 많이 잡히던 청어가 식탁의 주인공이 됐다.
오치 도시유키 일본 지바공대 교수는 저서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에서 “성욕을 억제하기 위해 중세 기독교가 권장했던 물고기 청어의 이동 경로가 유럽 역사를 뒤바꿨다”고 말한다. 저자는 책 제목처럼 청어와 대구를 중심으로 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13세기 유럽 국가들은 청어를 국부의 원천으로 삼았다. 당시에는 스칸디나비아반도와 유럽대륙 사이에 있는 발트해가 청어 산란장이었다. 어부들은 청어잡이에 열을 올렸다. 어부들은 청어를 통해 커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도시 상인들과 동맹을 결성했다. 1241년 독일 북부 뤼베크와 함부르크 상인들이 뭉쳤다. 이는 200여 년 동안 유럽의 패권을 쥔 도시동맹인 ‘한자동맹’으로 발전했다.
청어떼가 갑작스럽게 산란 장소와 회유 경로를 발트해에서 북해로 바꾸자 한자동맹은 급격히 몰락했다. 대신 북해 인근 국가인 네덜란드가 신흥 강국으로 떠올랐다. 스페인에 식민 지배를 받던 소국인 네덜란드에 청어 물량이 쏟아지자 무역량이 급격하게 늘었다. 네덜란드 어부들은 청어가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 소금에 절여 유통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소금에 절인 청어로 한자동맹을 무너뜨린 네덜란드 상인들은 동아시아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항로 개척에 매진했다”며 “희망봉 항로를 중심으로 한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저자의 물고기 이야기는 유럽에서 세계로 확장된다. 이번엔 대구다. 1496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존 캐벗은 황금이 묻혔다고 알려진 ‘지팡구(일본)’를 향해 출항했다. 지팡구 대신 도착한 곳은 북아메리카 연안에 있는 대구 산란장이었다. 저자는 “캐벗이 발견한 거대한 대구떼를 쫓아 신항로 개척시대가 열렸다”며 “대구가 세계사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꾼 셈”이라고 말한다. (서수지 옮김, 사람과나무사이, 312쪽)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