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생물학자 엔도 아키라는 1973년 곡물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한 청록색 곰팡이에서 콜레스테롤을 만드는 핵심 요소를 차단하는 ‘페니실륨 시트리눔’이란 약물을 분리해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선 ‘암을 유발하는 등 부작용이 있는 성분’이라고 외면했다. 반면 독일계 글로벌 제약사 머크는 그의 아이디어를 살려내 1987년 세계 최초로 스타틴 계열 약품 ‘메바코’를 출시했다. 그 약품 덕에 전 세계 심장질환 사망률이 크게 떨어졌다. 스타틴 계열 약품으로 머크가 벌어들인 돈은 지금까지 900억달러(약 110조원)에 이른다.
물리학자이자 바이오테크기업 신타제약 설립자인 사피 바칼은 저서 《룬샷》에서 “세계의 패권을 잡고 질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친 위대한 기업들에는 공통된 시스템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나사 빠진’ 혹은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다들 미친 짓이라고 손가락질받는 아이디어, 일명 ‘룬샷(loon shot)’이 결과적으로 조직의 성장동력이 돼 개인과 기업,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은 과정과 그 안에 숨어 있던 공통 원리를 과학과 경영 두 관점에서 접근한다.
저자는 외면받던 아이디어를 혁신적 발명품으로 바꾼 ‘룬샷’에는 “어떤 원칙들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물리학자답게 아이디어를 바로 개발하는 그룹과 기존 영역을 지키는 그룹 간 ‘상분리’, 두 그룹 간 협조와 피드백이 잘 오가도록 보장하는 ‘동적 평형’ 등 과학원리로 그 원칙들을 설명한다.
저자는 ‘아이디어는 창의적 문화에서 꽃핀다’는 세간의 시각을 뒤집어놓는다. 그 예로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휴대폰 시장의 절반가량을 점유했던 기업 노키아를 든다.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를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노키아 엔지니어들은 2004년 ‘컬러 터치스크린에 고해상도 카메라가 달린 전화기’와 ‘온라인 앱스토어’ 개발을 제안했다. 하지만 노키아 경영진은 이를 묻어버렸다. 3년 뒤인 2007년 이 ‘미친 아이디어’가 스티브 잡스에 의해 아이폰으로 구현되는 장면을 그들은 목격했다.
저자는 “작은 온도 변화가 딱딱한 얼음을 흐르는 물로 바꾸듯 창의성과 효율성이 균형을 이뤄내는 구조의 작은 변화가 기업,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