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극장가에 신작 영화가 사라진 지 오래다. 팝콘을 한아름 들고 극장 문을 통과해 내 좌석을 찾아 앉았을 때의 편안함, 흘러나오는 광고를 보며 내가 선택한 영화를 기다릴 때 느껴지는 달뜬 마음, 영화관이 선사하는 특별한 즐거움이 아쉬운 요즘이다.
개봉을 앞둔 새 영화가 기근인 극장에선 재개봉 영화 상영이 줄을 잇고 있다. 그중에서도 사랑받는 작품이 무엇인가 보니 2016년 개봉한 ‘라라랜드’였다. 미국 신예 감독 데이미언 셔젤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배경으로 배우 지망생과 재즈 피아니스트의 사랑과 꿈을 그린 영화다. 비평가와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고, 흥행 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라라랜드’가 특별한 점은 뮤지컬 로맨스 장르의 영화라는 것이다.
1950년대 전후 노래와 춤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뮤지컬 영화가 대중의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사랑은 비를 타고’(1952)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한동안 잊혔던 장르에 불을 붙인 작품이 ‘라라랜드’다. 이 영화의 탄생에는 연출을 맡은 셔젤의 공이 크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라라랜드’로 큰 성공을 거두며 할리우드를 이끌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은 그는 꽤 독특한 이력의 연출자이기도 하다.
재즈 드러머가 꿈이었으나 엄격한 스승에게서 혹평만 듣다 드럼을 그만둔 그는 하버드대에 입학한다. 그리고 같은 학교에서 훗날 자신의 모든 영화에서 음악감독을 맡게 될 친구 저스틴 허위츠를 만난다. 음악을 사랑했던 두 룸메이트는 하버드대 4학년 때 ‘라라랜드’의 초안을 완성하지만 무명이었던 그들에게 투자할 영화사를 찾는 데 실패하고 만다.
‘라라랜드’를 잠시 접은 셔젤은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위플래쉬’로 대박을 터뜨리는 데 성공한다. 드럼을 배우는 학생과 그를 가르치는 혹독한 스승의 이야기로 흥행을 거둔 것은 물론, 천재 신예 감독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성공을 기반으로 셔젤 감독과 허위츠 음악감독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영화 ‘라라랜드’를 제작하게 된다.
꽉 막힌 LA의 고속도로에서 시작하는 ‘라라랜드’는 첫 신부터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단 이틀간 고속도로를 빌려 촬영했다는 전설의 오프닝 신은 90명이 넘는 댄서가 3개월간의 연습을 통해 완성했다. 영화의 포스터에도 쓰인 두 남녀의 탭댄스 신을 가장 아름다운 LA의 황혼을 배경으로 찍기 위해 1년 중 가장 노을이 멋진 이틀, 그중에도 최고의 ‘매직아워’라는 오후 7시20분부터 7시50분 사이 30분간을 촬영해 만들었다는 후일담은 ‘라라랜드’가 왜 셔젤에게 최연소 아카데미 감독상을 선사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LA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아름다운 사계절을 담기로 결심한 감독 덕분에 LA 곳곳을 관광하듯 보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사실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뮤지컬 영화에 몸이 얼어붙는 관객도 있다. 봉준호 감독조차 앞으로 연출하기 어려운 장르가 있다면 뮤지컬 영화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라라랜드’의 세계에 조심스레 발을 디뎌 보길 추천한다.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보는 재미가 때론 더 큰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