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ㅇ 재난 ㅎㄱㅎ합니다.”
암호 같은 글이 인터넷 주요 커뮤니티에 등장했다. 이 글은 “서울 긴급재난지원금 선불카드를 현금화한다”는 뜻이다. 구체적인 가격이나 거래 방식은 밝히지 않았다. 본문에는 달랑 ‘쪽지’라는 두 글자만 써 있다. 구매 의사가 있다면 쪽지를 보내라는 얘기다.
지방자치단체가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을 할인 매매하는 ‘현금깡’이 증가하고 있다. 불법 영업에 대한 정부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휴대폰 불법판매처럼 은어를 동원해 거래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구를 돕기 위해 시행된 정책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자체 단속 피해 ‘은밀하게’
일명 ‘재난지원금 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이달 중순부터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부터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에 선불카드 또는 상품권 형태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이달 초부터는 대구를 비롯해 경북, 광주 등 다른 지자체뿐 아니라 구 단위로도 재난지원금이 풀렸다. 보름가량이 지나면서 본격적인 깡이 활개를 치는 분위기다. 지난 21일부터는 경기도 재난지원금도 ‘깡 시장’에 나왔다.
재난지원금을 판매하는 글은 ‘중고나라’ ‘당근마켓’ ‘번개장터’ 등 주요 중고거래 플랫폼은 물론 SNS에 수시로 올라오고 있다. 글은 대부분 게재됐다 삭제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판매 글엔 공통점이 있다. 제목이 몇 글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초성으로 돼 있다. ‘재난 ㅎㄱㅎ 문의’, ‘ㅅㅂㅋㄷ 거래합니다’ 등이다. ‘ㅎㄱㅎ’는 현금화, ‘ㅅㅂㅋㄷ’는 선불카드를 의미한다. 지자체로부터 받은 재난지원금을 액면가보다 할인한 금액으로 판매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재난지원금의 판매 가격대는 대부분 액면가의 90% 안팎이다. 30만원짜리 선불카드는 27만~28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경쟁에 불이 붙어 26만원까지 가격을 내려 파는 사례도 있다. 대구시 선불카드는 50만원짜리가 45만~46만원에 거래된다. 사용처가 지역 상권 등으로 제한된 재난지원금 대신 일부 손해를 보더라도 현금으로 바꾸겠다는 목적이다.
일부 판매자는 여러 지역 선불카드를 동시에 팔았다. 판매 글엔 ‘서울(즉시)’ ‘대구(대기 중)’라는 내용만 담겼다. 서울 재난지원금은 바로 판매 가능하고, 대구지역 선불카드는 신청해놓고 기다리는 중이니 예약판매하겠다는 뜻이다.
중고거래 플랫폼 관계자는 “서울에 살면서 지방에 거주하는 가족의 선불카드까지 모아 되파는 식의 거래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재난지원금을 사겠다는 사람도 늘고 있다. 대량 구매를 하고 싶다며 판매 문의를 환영한다는 글까지 등장했다.
최고 ‘징역 3년’ 불법인데도…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지자체의 속은 타들어간다. 코로나19 사태로 위기를 겪는 가구를 돕겠다는 취지에 어긋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같은 거래는 모두 처벌 대상이다. 전자금융거래법상 재난지원금 등으로 지급받은 지역화폐(선불카드, 상품권) 등을 팔거나 구입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매매 행위를 광고하거나 권유해도 마찬가지다. 위반 시 최고 징역 3년, 벌금 2000만원을 부과받을 수 있다.
지자체와 중고거래 플랫폼 등은 재난지원금 깡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16일 페이스북을 통해 “지역화폐 할인매매를 시도하면 관련자를 끝까지 추적해 전원 처벌하고 전액 환수 조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울시도 관련 거래를 단속하고 처벌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중고나라는 오는 8월 말까지 재난지원금 관련 거래를 제한하기로 했다. 중고나라 관계자는 “20일부터 재난지원금 거래가 급증하는 추세”라며 “관련 거래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적발한 회원에겐 페널티를 부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