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원에 ‘글로벌’은 30년간의 꿈이었다. 1991년 일찌감치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은 33년간 회사를 키워온 남승우 전 대표의 오랜 목표였다.
하지만 해외 진출은 그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두부·콩나물 등 식자재를 팔았지만 교민사회를 넘어서는 시장 공략이 없었고 해외 법인의 적자는 쌓여 갔다. 만성화된 적자 구조였던 해외 사업의 구원투수로 택한 제품은 ‘김치’였다. 무작정 한국 토종 김치를 먹어 달라는 게 아니었다. 김치에 글로벌의 옷을 입혔다. 서양인이 싫어하는 김치 특유의 냄새를 없애고 단맛을 끌어올린 ‘글로벌 김치’로 미국 시장을 공략했다.
서양인도 좋아하는 ‘달콤한 김치’
풀무원은 친환경 식자재 유통을 모태로 1981년 창업했다. 콩나물·두부·달걀과 같은 식자재에 제품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다음’이 없었다. 국내에서는 원물 식자재 시장보다 가정간편식(HMR)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다. 1인 가구가 증가하는 트렌드도 따라가지 못했다. 해외에서는 만년 적자의 늪을 벗어날 히트 제품이 없었다. 해외법인은 2015년 428억원의 적자를 냈고, 2016년(-432억원)과 2017년(-376억원)에도 흑자로 돌아서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효율 총괄대표(사진)가 2018년 1월 부임했다. 풀무원을 이끌었던 남 전 대표는 가족 경영의 길을 포기하고 과감하게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했다. 이 대표는 1983년 ‘1호 사원’으로 입사한 후 회사와 성장을 함께한 풀무원맨이다.
이 대표는 풀무원의 이미지가 두부·콩나물·계란으로만 인식되는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취임하자마자 사내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냉동 HMR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그는 “가공식품이야말로 풀무원의 미래”라며 “두부도 그냥 파는 게 아니라 식물성 단백질 가공식품으로 제품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정체 상태인 글로벌 시장을 돌파할 무기로 김치를 택했다. 그는 “김치는 글로벌 시장에서 꼭 성공시켜야 하는 한국 식문화”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풀무원 김치는 국내 시장에서 점유율이 1%밖에 되지 않았다. 국내 김치시장은 대상의 ‘종가집’과 CJ제일제당의 ‘비비고 김치’가 부동의 1, 2위였다.
풀무원은 서양인 입맛에도 맞는 수출 전용 김치로 승부를 걸었다. 자체 개발한 ‘씨앗 유산균’으로 발효해 배추의 단맛을 배가시켰다. 설탕에 의존하지 않고도 건강한 단맛을 냈다. 씨앗유산균은 외국인이 김치를 싫어하는 1순위 이유인 ‘시큼한 냄새’를 잡았다. 김치 품질력을 유지하기 위해 해외에 생산 거점을 두지 않았다. 지난해 5월 전북 익산에 ‘글로벌 김치공장’을 완공했다. “김치 유산균은 한국에서 만들어야 제맛을 낸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월마트 찍고 미국 시장 공략
미국에서는 ‘나소야 김치’라는 브랜드로 팔리고 있다. 2018년 월마트 100개 점포에 시제품을 선보이며 시장 반응을 살폈다. 지난해 5월엔 월마트 3900개 점포로 판매망이 확대됐다. 현재는 크로커, 세이프웨이 등 1만 곳에서 나소야 김치를 판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에 따르면 나소야 김치는 지난 2월 미국 김치시장 점유율 42.8%로 한국, 중국, 일본의 모든 김치브랜드를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
미국에서 ‘아시안 누들’로 불리는 생면 시장도 풀무원이 돌파구로 삼고 있는 분야다. 풀무원은 1995년 미국에서 우동, 냉면, 칼국수를 판매했지만 인구 250만 명에 불과한 교민사회는 좁은 시장이었다. 중국산 저가형 건면이 대부분이었던 미국에서 프리미엄으로 승부했다. 미국 코스트코에서 한국식 짜장면과 데리야키 볶음우동이 인기를 끌었다. 풀무원 누들 제품의 매출은 2015년 50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최근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지난해 3000만달러를 달성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