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찾은 서울 이촌동 강촌아파트 인근의 한 중개업소엔 ‘급급매’라고 적힌 매물 소개가 가득 붙어 있었다. 이 단지의 전용면적 84㎡형은 이달 초까지 매도 호가가 16억5000만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4·15 총선이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이후 14억원 중반대 ‘급급매’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J공인 관계자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가 유예되는 6월 말까지 팔자는 집주인이 많지만 매수세가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강남발 집값 하락세가 강북과 수도권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수·용·성(수원·용인·성남)’ 가릴 것 없이 매수세가 끊기고 있다.
마용성, 노도강도 꺾였다
강남발 하락세는 강북의 인기 주거지인 마·용·성으로 번졌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1단지 전용 84㎡는 지난 2월 14억9000만원에 거래됐고, 3단지는 지난달 14억9900만원에 팔렸다. 몇 달 새 1억원 이상 하락한 셈이다.
용산구 이촌동 이촌코오롱 전용 84㎡는 올초 15억4000만원에 거래됐지만 최근 14억5000만원에 팔자는 급매가 나왔다. 성동구 옥수동 래미안옥수리버젠 전용 59㎡형도 12억8000만원에 나온 급매물 호가가 총선 후 3000만~4000만원가량 더 낮아졌다.
대출 규제를 받지 않는 9억원 이하 아파트가 많아 ‘풍선효과’를 보던 노·도·강도 힘이 빠졌다. 노원구 중계동 주공5단지 전용 94㎡는 집주인이 7억8000만원에 매물을 내놨지만 예비 매수자는 7억원 초반을 요구해 계약이 불발됐다. 중계동 S공인 대표는 “지난달 초까지는 갭투자 등 매수 문의가 꾸준히 들어왔지만 지금은 아예 끊겼다”고 말했다.
성남에서도 평균 시세보다 1억원가량 낮춘 급매가 잇따르고 있다. 성남 수정구 ‘산성역포레스티아’ 전용 84㎡ 분양권 급매는 9억7000만원에 나와 올 들어 처음으로 10억원 선이 깨졌다. 인천과 용인 상황도 비슷하다. 인천 연수구 S공인 관계자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하면서 그동안 비규제지역으로 분류된 인천도 규제 지역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강남권 역시 추가 하락이 예측된다. 지난달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의 주택 거래량은 2088건으로, 전달(2458건)보다 15.1% 줄었다. 3.3㎡당 1억원 시대를 연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도 전용 84㎡는 28억원대 급매가 나오고 있다. 1월 18억원에 거래된 잠실 트리지움 전용 85㎡는 최근 16억8000만원에 팔렸다.
6월 이후 방향성 잡힐 듯
부동산 전문가들은 6월 말까지 집값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6월 1일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를 내야 하는 과세 기준일이다. 이 전까지 팔면 보유세를 피할 수 있다. 또 6월 말은 다주택자가 조정대상지역 내 10년 이상 보유 주택을 팔면 양도세 중과를 적용받지 않는 유예 기한이다.
총선 후 규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유지될 것이란 전망도 시장 약세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는 이유다.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기가 어려운데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대출을 전면 금지하는 등의 초강력 규제를 버텨낼 재간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변수는 있다. 6월 말 이후에는 강남권 등에서 매물이 아예 자취를 감출 가능성이 높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팔 사람은 6월 말까지 다 팔고 이후에는 끝까지 버틸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대규모 자금을 풀고 있어 유동성이 넘쳐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규제 고삐를 풀지 않더라도 집값이 급락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시중에 돈이 넘치면 결국 부동산으로 몰리는 게 한국”이라고 했다. 공급도 부족하다.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내년 서울지역 신규 입주 물량은 총 2만3217가구로 올해(4만2173가구)의 절반 수준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집값은 하락세인데 분양시장이 뜨거운 것은 신축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의미”라며 “재건축이 사실상 막혀 있어 공급 부족 현상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현주/신연수/배정철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