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도 재생에너지 강조하는 유럽…"녹색경제로 경기 부양"

입력 2020-04-22 08:43
수정 2020-04-22 08:59
유럽연합(EU)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기침체에도 재생에너지 등 녹색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선언했다. 석탄발전 등 탄소배출산업 투자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계획이다. 기후변화 대응이 전 지구적 핵심 과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유럽이 코로나19라는 비상사태를 활용해 글로벌 재생에너지 산업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AFP통신에 따르면 스웨덴 엑서기AB가 운영하는 스톡홀름 베르타베르케트 석탄화력발전소는 1989년 가동된 이래 31년만인 지난주 폐쇄됐다. 이 발전소는 스웨덴에 있는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였다. 스웨덴은 유럽에서 벨기에 오스트리아에 이어 석탄발전을 완전 중단한 세 번째 국가가 됐다. 벨기에는 2016년 유럽 최초로 석탄발전 가동을 중단했다. 오스트리아는 지난 18일 남동부 멜락에 있는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했다.

EU에 따르면 오는 2025년까지 프랑스(2022년), 슬로바키아·포르투갈(2023년), 영국(2024년), 이탈리아·아일랜드(2025년) 등 6개국이 추가로 석탄발전 가동을 전면 중단할 계획이다. 이어 그리스(2028년), 네덜란드·핀란드(2029년), 헝가리·덴마크(2030년) 등이 뒤를 이을 전망이다. 다른 회원국들도 석탄발전 가동 중단시점을 조만간 EU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핀란드, 이탈리아, 라트비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그리스 등 EU 회원국 13개국은 이달 중순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하는 그린딜(녹색정책)을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기부양의 핵심수단으로 사용하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유럽을 이끄는 두 축인 EU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해 말부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녹색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 왔다. 목표는 오는 2050년까지 실질적인 탄소 순배출 총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분야 기업에겐 대출규제를 완화해주고,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투자는 대폭 줄이는 등 녹색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ECB의 통화정책을 활용해 재생에너지 분야 기업 채권을 대거 매입하는 이른바 ‘녹색 양적완화’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유럽 경제가 막대한 타격을 받으면서 녹색정책이 좌초 위기에 처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녹색정책도 코로나19 비상사태를 맞아 전면적인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당초 EU는 올 초 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위해 오는 2030년까지 1조 유로(약 1334조원)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코로나19로 회원국 및 EU 기업들이 막대한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EU 재원을 구제금융에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이에 대해 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달 초 “그린딜은 EU가 반드시 가야만 할 길”이라며 “녹색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경기부양의 핵심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녹색정책을 예정대로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한 것이다. EU 13개 회원국도 녹색정책을 경기부양의 핵심수단으로 삼겠다고 선언하며 힘을 보탰다.

EU 관련 전문매체인 유랙티브닷컴을 비롯한 현지 매체는 코로나19로 국제유가가 바닥을 찍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유럽이 재생에너지 산업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계기라고 전했다. 통상 저유가 현상이 계속되면 기존 석탄·석유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 산업으로의 전환이 지연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기존의 주력 에너지원 가격이 싼 값에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굳이 비싼 돈을 줘가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서두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유럽 국가에선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기존 에너지원을 밑돌고 있다. 각국 정부가 2000년대 초반부터 재생에너지 분야 투자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2018년 기준 EU 회원국의 전력 생산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에너지원은 석탄·석유·가스로 45.9%였다. 이어 △원자력(25.5%) △풍력(12.2%) △수력(11.8%) △태양광(4.0%) △지열(0.2%) 등의 순이었다. 풍력과 수력, 태양광 등 통상 재생에너지로 분류되는 에너지원은 28.0% 수준이다.

하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석탄발전 비중이 높은 동유럽 회원국까지 포함한 수치다. 서유럽 국가로 한정하면 재생에너지 비율은 40%까지 육박한다. 영국의 재생에너지 비중도 2018년 말 기준 전체 에너지원의 37.1%에 달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40년 전 세계 전력발전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기준 25%에서 40%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40%를 차지하는 석탄발전 비중은 25%로 축소될 것으로 분석했다.

유럽의 대표적인 석유기업들도 석유를 대체할 재생에너지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영국 최대 에너지회사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지난 2월 EU의 녹색정책에 맞춰 오는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선언했다. 석유 채굴을 통해 번 돈을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산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석유 생산시설 규모는 더이상 늘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프랑스 최대 석유업체인 토탈도 재생에너지 산업에 적극 투자하는 등 종합에너지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EU는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전 지구적 과제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국가가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은 지난해 11월 전 세계 국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규제하기로 한 파리기후협약에서 공식 탈퇴했다.

하지만 미국도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과제를 더 이상 외면할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은 녹색경제를 핵심과제로 앞세운 명분으로 국제공조를 통해 환경을 살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비상사태를 활용해 미국 등을 제치고 향후 핵심 유망산업으로 부각될 재생에너지 산업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