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시대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나프타분해설비(NCC) 중심의 한국 석유화학 업체가 ‘슈퍼 사이클’에 올라탈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 최대 에틸렌 생산국인 미국이 셰일가스에서 에틸렌을 뽑아내는 에탄크래커(ECC)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유가 하락과 셰일가스 생산 축소가 맞물리면서 ‘20년 만에 NCC 시대를 맞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석유화학株 일제히 상승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은 배럴당 -37.63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올 1분기 실적 직격탄을 맞은 국내 석유화학 업체는 저유가 상황을 반기고 있다. 특히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석유 제품인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을 생산하는 NCC 방식을 채택해 경쟁국에 비해 특수를 누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석유화학 업체들에 저유가는 원료(나프타) 가격을 낮출 수 있어 호재다. 이 같은 기대감에 관련 기업 주가도 상승세다. 롯데케미칼은 이날 1.5% 오른 20만3500원에 장을 마쳤다. 3거래일 연속 오름세다. 대한유화는 2.56% 상승한 12만원에 거래가 마감됐다. LG화학 역시 소폭(0.71%) 올랐다. 국제 유가 하락에 따른 원가절감 효과가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추가 상승도 예측되는 상황이다.
셰일가스 생산 축소도 호재
전문가들은 “2015년 저유가 당시 경험한 호황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호황을 맞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을 뽑아내는 방식은 국가마다 차이가 있는데, 현재는 한국에 유리한 구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세계 1위 생산국인 미국은 셰일가스에서 에틸렌을 뽑아내는 ECC 방식을, 2위인 중국은 CTO(석탄 분해설비)를 주로 이용해 에틸렌을 생산하고 있다. 국내 기업은 NCC 방식으로 꾸준히 생산량을 늘려왔다.
한국 업체엔 셰일가스 및 오일 생산량이 급감한 것은 호재다. 2015년 유가가 하락한 원인은 셰일가스 생산량 확대였다. 이 때문에 ECC 원가도 덩달아 하락했다. NCC만 특수를 누릴 상황이 아니었다. 황유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유가 하락 국면에선 셰일가스 및 오일 생산량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NCC의 원가 경쟁력은 압도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셰일가스의 생산량이 감소할 경우 에탄가스 생산량도 줄어들게 되는데, 이는 ECC 원료 비용이 급등하는 요인이 된다”고 부연했다.
포스트 코로나 기대감 커져
업계에서 20년 만에 NCC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지금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기대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실제 유가가 하락한다 해서 당장 원료 가격에 반영되지는 않는다. 1분기 석유화학업체의 실적이 고꾸라진 것도 이 때문이다.
원료를 미리 비축해둬야 하는 특성상 수개월 전 가격으로 구입한 원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수요가 급격히 줄었지만 비싼 값에 사들인 원료로 에틸렌 등을 생산하고 있어 수익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유가가 폭락한 상황에서 사들인 원료를 비축해두면 코로나19 종식 이후 원가경쟁력은 급등한다. 지금보다 수요가 늘어 제품 판매가가 오를 경우 수익폭은 더욱 확대될 것이란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ECC의 경쟁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저유가로 생산원가가 낮아진 만큼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은 꾸준히 NCC 설비를 확대하고 있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2021년 가동 목표로 각각 80만t과 75만t 규모 공장을 추가 건설 중이다. 다만 롯데케미칼은 3조5000억원을 투입해 설립한 미국 ECC 프로젝트에 비상이 걸렸다는 우려도 나온다. 롯데케미칼은 2011년 고유가 지속으로 석유화학 부문 실적이 악화되자 원료 다변화 차원에서 ECC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