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산업 인력수급 전망, 교육·노동개혁 못하면 무슨 소용 있나
산업통상자원부가 디지털 헬스케어, 스마트·친환경 선박, 드론, 지능형 로봇 등 4대 신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산업기술인력 실태조사 결과와 함께 2028년까지 필요한 인력 전망치를 내놨다. 2018년 말 기준 4대 분야의 부족 인력은 4755명으로 평균 부족률은 4.3%인 것으로 조사됐다. 주력산업 평균 부족률(2.2%)의 2배다.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인력부족률은 7.1%로 인력 공급이 가장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눈여겨볼 대목은 또 있다. 4대 신산업에서 석·박사급 고급인력의 부족률은 9.1%에 달했다. 기업이 연구개발 인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산업부는 2028년까지 4대 분야 산업기술인력이 16만8000명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다양한 인력을 어떻게 원활히 공급할지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산업부는 주기적으로 산업기술인력 실태 및 전망 조사를 하고 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연구개발 인력수급 전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의 미스매치는 늘 그대로다. 여기에는 정부의 인력 전망과 교육현장 및 노동시장이 따로 노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정부가 인력 전망을 할 때마다 단골 메뉴로 제시하는 대학 정원 조정, 직무전환을 위한 직업훈련만 해도 그렇다. 대학은 정원 조정과 학과 개편을 자율적으로 할 수 없다. 직업훈련도 지금처럼 노동시장이 경직돼 이동성이 떨어지면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교육·노동개혁 없이는 인력수급 전망을 아무리 해봐야 소용없다는 얘기다.
이번 조사 결과는 1년 전의 인력 부족 정도를 집계한 것이다. 코로나 충격에 따른 기업 구조조정, 이후 디지털 전환 가속화에 따른 산업 재편까지 고려하면 신산업 인력 부족은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수요·공급 간 미스매치를 해소하는 등 인력수요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려면 대학에 대한 획일적 규제의 혁파,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는 더 늦출 수 없는 과제다. (한국경제 4월 21일자)<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사설 읽기 포인트
미국, 채용·해고 다 쉬워 이직도 자유로워
한국은 유연성 떨어져 일자리 창출 부담
교육·노동개혁 없는 인력수급 계획은 '한계'
‘코로나 쇼크’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고용 시장에서 두 가지 주목할 만한 게 있었다. 먼저 엄청나게 늘어난 실직자다. 3월 셋째 주와 넷째 주 2주간 실업 급여 신청자가 거의 1000만 건에 육박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인구와 취업자 수를 감안하더라도 단기간에 급등한 숫자다. 이번 코로나 전염병의 충격과 경제적 파장을 감안한다 해도 놀랍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2월에 3.5%로 매우 안정적이었던 미국 실업률이 4월에는 17%로 치솟았다는 발 빠른 추계도 나왔다.
반면에 아마존의 채용 계획도 놀라울 정도였다. 3월에 발표된 이 회사의 신규 채용 규모는 10만 명이었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 기업이고, 코로나로 인해 인터넷을 통한 가정용품 주문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대단하다.
이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가능한 이유가 바로 미국의 노동시장에 ‘고용의 유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채용도 쉽고, 회사 사정이 생기면 해고도 수월한 게 미국이다. 기업으로서는 신규 채용 부담이 크지 않고, 구직자나 기존의 근로자는 직장과 회사를 옮겨 다니기가 편하다. 일하다 지치거나 개인적 사정이 생기면 잠시 쉬는 것도 어렵지 않다.
반면 한국 사정은 미국과 완전히 다르다. 기업으로서는 근로자의 신규 채용에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한번 채용하면 특별히 문제가 없는 한 법에 정해진 정년(보통 60세) 때까지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 노동과 고용 관련 법이 근로자 해고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오래 근무하면 연공을 인정받아 설사 노동 생산성이 떨어져도 임금은 오르게 된다. 퇴직금 적립 외에 국민연금 고용보험 의료보험 산업재해보험 등 4대 공적 보험료 회사 부담도 만만찮다.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부담도 대부분 기업이 안고 있는 현실적 고민이다.
그래서 구직자나 전직 희망 근로자는 어떻게든 노조 등이 잘 조직된 기업에 취업을 강력히 희망한다. 한번 취업이 되면 범죄를 저지르거나 명백한 해사 행위 등을 하지 않는 한 고용이 보장된다. 물론 일을 하다가 개인적 휴식기를 가지면서 스스로 재교육 기회를 가지거나 좋아하는 일에 매달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주체적인 삶을 위한 융통성도 줄어드는 셈이다. 한국 근로자는 언제든지 스스로 퇴직을 할 수 있지만 한번 고용시장에서 나가면 재취업이 쉽지 않은 것도 단점이다.
고용 관계가 경직될수록(해고가 어려울수록) 통상 근로자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튼튼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 사설에서 문제 제기하는 것처럼 연구개발 등의 고급인력은 특히 더 그렇다. 한 직장에 얽매일 수밖에 없고, 자기 몸값을 올리기도 어렵다. 회사나 연구소처럼 채용자 쪽에서도 자연히 많은 인력의 채용은 주저하게 한다. 인건비가 비싼 고급 인력일수록 그런 환경에 더 몰린다. 자연히 일자리가 적어진다.
이런 근본 문제는 외면한 채 정부가 나서 인력수급 계획을 세워봤자 산업계의 현실과는 겉돌게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채용도 쉽고 경영사정이 어려울 때 일시적으로 내보내기도 쉬운 게 유리하다. 근로자 처지에서는 해직 가능성은 있지만 취업시장은 상시적으로 돌아가고 재취업도 일상적으로 된다면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 정부가 굳이 인력수급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국내외에서 인력도 자연스레 공급된다. 그렇게 가는 것이 고용시장의 체질 개선이고 노동개혁이다. 산업 현실에 맞는 인재를 효율적으로 키워내자는 교육개혁도 같은 맥락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