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갚아야 할 빚이 4조원을 넘는 두산중공업이 유동성 위기 진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당장 오는 27일까지 상환해야 하는 5억달러(약 6000억원) 규모 외화채권을 대출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면서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이 외화채권은 올 상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두산중공업의 차입금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수은 “추가 지원 문제는 별개”
수출입은행은 21일 방문규 행장 주재로 확대여신위원회 회의를 열어 두산중공업에 외화채권 상환 목적으로 5868억원을 대출해주는 안건을 승인했다. 만기가 ‘1년 이내’로 짧지만 두산중공업으로선 상당한 시간을 벌게 된 셈이다. 수은의 두산중공업 대출잔액은 약 1조4000억원으로 늘었고 보증잔액은 5000억원으로 줄었다.
이날 결정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다. 수은은 두산중공업이 이 외화채권을 발행할 때 지급보증을 섰다. 두산중공업이 갚지 못하면 수은이 대신 갚고 나중에 두산 쪽에서 받아내야(구상권 행사) 하는 구조다. 자구안을 검토 중인 상황에서 ‘채무불이행’ 딱지가 붙도록 방치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대출 전환을 해주지 않으면 두산중공업이 채권을 추가 발행해 갚아야 하는데 신용등급이 BBB로 떨어져 쉽지 않다.
다만 수은 관계자는 “이번 조치를 두산중공업에 대한 채권단의 추가 지원 방침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수은은 이날 대출 전환 외에 수천억원 안팎을 추가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수은은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기업에 대한 만기 연장 성격”이라고 했다. 채권단은 “국책은행 지원자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도 했다. 강도 높은 ‘고통 분담’을 전제로 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우리·농협은행도 만기 연장 시작
두산중공업은 차입금 5700억원, 신주인수권부사채(BW) 5000억원어치 등은 자체 보유한 자산과 채권단이 지원해준 ‘마이너스 통장’(1조원 한도대출)으로 상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채권단은 이 정도 ‘긴급 수혈’로는 정상화가 힘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이 연말까지 필요한 부족자금이 2조원 이상일 것으로 보고 있다. 국책은행과 우리·농협은행 등은 올해 돌아오는 대출금 2조5000억원가량의 만기를 연장해줄 분위기지만 외국계 은행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채권단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의 전체 채무액은 4조9000억원가량이다. 산업은행(7800억원), 수은(1조4000억원), 우리은행(2270억원), 농협은행(1200억원), SC제일은행(1700억원) 등이다.
산업계에서는 채권단이 다음달 초 발표할 경영정상화 방안의 핵심은 지배구조 개편이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산은은 지난달 두산중공업과 자회사·손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두산밥캣을 분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두산중공업의 유동성 위기가 다른 계열사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두산중공업을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 지분이 담긴 투자부문과 두산건설을 아래에 둔 사업부문으로 나눈 뒤 (주)두산 아래 투자부문을 두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20년 만에 다시 공기업화?
금융권에서는 그룹에서 따로 떼어낸 두산중공업의 거취를 두고 공기업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예측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두산중공업의 전신은 한국중공업으로, 외환위기를 계기로 2000년 두산그룹에 넘어오기 전까지 공기업이었다.
산은이 출자전환 등을 통해 두산중공업을 인수한 뒤 한국전력 자회사로 둘 것이라는 예상이다. 한전은 산은이 32.9%, 정부가 18.2%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추진이 불가능하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두산중공업을 매각해야 하는데 다른 사기업이나 해외 기업에 넘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가능한 한 회사 몸집을 줄이기 위해 두산중공업의 플랜트 부문, 두산건설 등을 매각하고 인력 구조조정 등도 거칠 것이란 분석이다.
임현우/이상은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