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이 늦어지면 자동차산업 생태계 전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자동차업계 대표들이 자리를 함께한 21일 간담회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자동차업계의 어려움을 전하고 지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성 장관도 자동차업계의 피해를 들은 뒤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몇 달 내 줄도산 나타날 수도”
이날 간담회는 서울 서초동 자동차산업협회에서 열렸다. 자동차업계에선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과 송호성 기아자동차 사장,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 도미닉 시뇨라 르노삼성 사장, 예병태 쌍용자동차 사장 등 완성차 5개사 사장이 총출동했다. 오원석 코리아FT 회장 등 부품업체 대표 8명과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간담회장에는 시종 긴장감이 돌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수출시장이 얼어붙으며 피해가 불어나고 있어서다. 간담회에 앞서 산업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17일까지 완성차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5.8%, 생산은 19.2% 줄었다. 개별소비세 인하 덕으로 내수만 2.1% 소폭 늘었다.
자동차업계 대표들은 “부품업체를 중심으로 줄줄이 도산하는 사태가 수개월 내에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부품업체들이 2018년부터 경영난을 겪어왔는데 올 들어 코로나19 충격까지 겹쳐 감당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실제 지난 2월 한국 및 중국에 있는 완성차 공장과 부품 공장이 한 차례 문을 닫았고, 지난달부터는 유럽과 미국 등지의 공장이 가동되지 않고 있다. 이달 들어서도 현대차 울산 5공장 2라인은 4일간, 쌍용차 평택공장은 8일간 휴업했다. 기아차는 국내 공장 세 곳의 가동을 일시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현대·기아차 4개국 6개 공장이 휴업 중이다. 이에 따라 국내 부품사들도 하나둘 가동을 멈추고 있다. 생산직 순환휴무를 시행하거나 관리자 임금을 삭감하고 있다.
내달 초 지원책 발표 전망
정만기 회장은 자동차업계가 이날 간담회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견뎌내려면 42조원 규모의 자금이 있어야 하며, 당장 32조원의 유동성 공급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요청했다고 전했다. 42조원 중 17조원은 수출 및 공장 운영 등을 위한 단기차입금이며 25조원은 3~4개월 동안 필요한 인건비 등 고정비다. 자동차업계는 이 가운데 10조원가량은 기업들이 감당할 수 있지만, 나머지 32조원가량은 은행을 통한 유동성 공급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자동차업계는 특히 재무상태가 열악한 협력업체들의 자금난이 심각하다고 정부에 전했다. 정 회장은 “신용등급이 BB 밑인 기업에는 은행이 대출을 안 해주고 있는데 자동차 업체 60% 이상이 BB 밑”이라며 “지금은 위기 상황인 만큼 신용등급이 B라도 대출과 회사채 매입이 가능하도록 해달라는 건의”라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선 개별소비세, 취득세, 등록세 등 각종 세금을 감면 혹은 유예해달라는 건의가 나왔으며 환경 규제 및 주 52시간 근로제 완화 등의 목소리도 나왔다. 일부 자동차 업체는 차 업체가 몰려 있는 울산, 경기 평택을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위기지역 업체들은 고용유지지원금을 추가로 받는 등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성 장관은 “과거 와이어링 하니스(자동차용 배선뭉치) 수급 차질 사례에서 보듯 한두 개 부품기업에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자동차 생산 전반이 타격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성 장관은 또 “자동차산업의 상황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면서 필요하면 관계부처와 함께 지원대책 마련을 검토하겠다”며 “새로 출시한 신차가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고, 노사관계도 안정적인 만큼 코로나19 사태만 진정되면 한국 자동차산업이 신속하게 반등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정부는 정유업계 등 다른 업계의 요구까지 취합해 늦어도 5월 초까지는 지원방안을 내놓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노경목/도병욱/구은서 기자 autonomy@hankyung.com